시정칼럼 / 나의 목숨 길이는 모른다
시정칼럼 / 나의 목숨 길이는 모른다
  • 논설위원 임춘식
  • 승인 2023.04.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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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시정일보] 독일 민요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 길이는 모른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잇값을 하며 올바로 살고, 곱게 늙어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희로 불리는 70세가 넘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다르다. 쉰이 넘고 예순이 지나 일흔이 되면서 외로워지고, 80세가 넘으면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인간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심신 모두 자립하여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건강수명은 남성 82세, 여성은 88세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때쯤은 타인으로부터 병간호를 받으며 살게 된다거나 신변잡사를 혼자서 하기 어려워지기가 시작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마지막 10여 년간은 질병 등으로 불편하거나 누군가의 간호받으며 산다는 말이다. ​따라서 건강수명이 늘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장수한들 바람직스럽지 않은 상태로 수명만 연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연령은 남성이 85세, 여성은 90세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우리가 모두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죽음에 이를 때까지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마지막 순간 “좋은 인생이었다. 고맙구나.” ​자족하면서 눈 감을 수 있는 행복한 길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불만족스러운 길이다.

평균 수명이 50년 전에 비해 남녀 모두 10여 년 이상 늘었고 고령에 따른 각종 문제, 즉 정년 재고용, 연금재정, 건강보험재정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연금개시 연령을 60세로 늦췄지만, 역부족이라며 연금제도 파탄을 막으려면 연금개시 연령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은 세계 최고 장수 국가로 손꼽힌다. 100세 이상 장수인이 52년 동안 계속 증가해 2022년에 9만 명을 넘어섰으며 100세인의 약 90%는 여성이다. 앞으로 여성은 절반, 남성은 4명 중 1명이 90세까지 생존해 100세인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지만 우리나라 100세 이상은 2만 1,500만 명으로 85%가 여성이다.

일본의 고령화율은 세계 최고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9%(약 3,600만 명)로, 2위 이탈리아보다 5%포인트 이상 높다. 초고령화로 취업률 역시 증가해 65세 이상 취업률은 25%이며 특히 65~69세 취업률은 10년 연속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취업률이 무려 36.9%로 인데 이는 노인 빈곤이 심각한 편이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01만8,000명으로 우리나라 총인구(5,162만8000명)의 17.5%에 달하며, 고령인구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해 오는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그야말로 ‘고령 지진(age quake)’이다. 고령 지진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역학 구도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 이슈가 나오면, 으레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얘기하지만, 남의 얘기가 아니다.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제 우리나라에 해당한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지방 도시에 빈집이 늘어나고 학교 건물이 노인요양시설로 변하는 등 활기를 잃었던 일본의 전철을 우리나라가 밟을 가능성이 크다.

​초고령사회, 80세의 벽을 넘으면 인생에서 행복한 20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체력도, 기력도 80세부터는 빠르게 떨어진다.​ 인생 100년 시대라고 하나 건강수명 평균은 남성 82세, 여성 88세. 90세를 목전에 두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병간호 받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무사히 90대에 진입한 건 축하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80세부터의 인생은 70대와는 전혀 다르다. 어제까지 하던 일이 오늘 할 수 없는 사태가 몇 번이고 닥친다. ​여기저기 몸의 불편함도 커진다. 암, 뇌경색, 심근경색, 폐렴 등 수명에 관계되는 질병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혹시 내가 치매인가? 하고 불안하게 생각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배우자의 죽음에 직면하여 절망과 고독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런 벽들을 극복하여 ‘행복한 만년’과 ‘불만스러운 만년’의 경계에서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활용하는 자세일 터이다. ​고령자는 병의 씨앗을 다수 품고 산다. 언제 무엇이 발병할지 알 수 없다. 오늘은 건강해도 내일 돌연사할 수도 있다.

노쇠는 병이 아니라 조금씩 몸이 약해져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천수를 다한 죽음’의 방식이다. 85세가 지나면 누구나 몸속에 많은 병의 종자를 갖고 있다. ​확실한 증상이 없어도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

병원에서 검사받고 병을 발견, 약을 먹거나 수술받아 수명을 연장할 것인가, 자택이나 요양원에서 하고 싶은 일 해가면서 살 것인가? 그건 오로지 자신이 선택할 일이다. ​80세가 넘으면 병은 완쾌되지 않는다. 일시 호전되는가 싶다가도 나쁜 부분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결국,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아름답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