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20 고난과 바닥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인문학 산책#20 고난과 바닥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 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3.04.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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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젊은 시절 혹은 십 대 때, 질풍노도의 시대, 사랑할 때, 봄이나 가을에, 우리는 잠시 시인이 되기도 하고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요즘처럼 살아가기에 힘들고 위기의 시대에는 생존의 문제에 급급할 때, 시가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이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개인적으로 실패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고 잠시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시와 철학 혹은 문학과 철학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면서부터 함께 시작되었다. 인류의 조상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고 시와 그림으로 그들 생활의 흔적을 남겼다. 처음에는 개인적 집단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부족이나 도시국가의 체제를 위해 서사시나 서정시 형태를 띠고 구전되었다.

그 후 점진적으로 문자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남겼다. 이제 한 해가 다시 저물어가고 있는 이때,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물론 이 나라, 시민들이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과 경제적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삶을 헤아려본다.

우리 시대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짧은 시를 통해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여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희망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경, 고난,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조건이기도 하다. 니체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도 견딜 수 있다.(돌파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의 미래와 삶을 위해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 상처 많은 꽃잎들이 / 가장 향기롭다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 발이 닿지 않아도 /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시인은 어려운 상황과 역경 속에서 외롭고 상처 입고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외로움, 상처, 바닥에서 다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용기, 새로운 힘과 희망을 찾고 바라본다.

외로움은 삶의 여정에서 함께 해야 하는 동반자라고. 상처는 살아가노라면 누구나 입는 것이라고. 그 상처가 삶을 풍성하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살다 보면 바닥으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바닥에서 그냥 일어나면 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희망, 의미, 사랑, 목적을 다시 갖고서.

고래를 위하여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 푸른 바다가 아니지 /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 별을 바라본다 /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어디 청년만 고래를 키우는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동안 고래와 별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품는 것이지. 그래서 푸른 바다를, 세상을 마음껏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이지. 희망을 품고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 나무 그늘에 앉아 /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나도 그늘이 있고 눈물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비가 오지 않는 곳은 사막이 되기 때문이지. 기쁨만 있고 웃음만 있다면 과연? 늘 아름답고 젊고 승리하고 즐거움만 있다면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더 좋고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지푸라기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 길가에 버려지고 흩날리는 지푸라기조차 존재의미가 있다. 지푸라기의 실존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다시 일어서길 기다리는, 진흙이 되어 당신의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라는 의미 있는 존재이다.

지푸라기도 그러할진대, 우리는 누구 하나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의미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