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인문학광장#1 전화 한 통
시정 인문학광장#1 전화 한 통
  • 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 승인 2023.05.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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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이재영
이재영

[시정일보] 저녁 7시가 다 돼 간다. 아내가 도착할 시간이 한 시간쯤 지났다. 아내는 요양보호사 교육학원에 강사로 나가고 있다.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근무하다가 15년 전, 50대 중반에 희망퇴직했다. 나는 7년 전에 사회생활을 접었다. 힘들게 운영하던 작은 제조업체였다. 그러자 아내가 대신 벌겠다며 나섰고, 학원 강사로 나간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나는 누님만 셋인 외아들이다. 부모님이 40대 중반에 낳아 귀한 자식으로 자랐다. 그래서 군대도 대학교 재학 중에 입대하여 6개월 만에, 부모 65세 이상인 독자로 의가사 제대했다. 부산 P 대학교 전자과 4학년 재학 중 10월 초에, L그룹 계열사인 대기업 J 사에 특채로 입사했다.

다음 해 5월 초에 간호사인 여자 친구와 결혼했는데, 그 여자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대학교도 동창인 지금의 아내다. 내 직장인 방위산업체 J사가 있는 경기도 오산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고향 진주에서 천 리나 떨어진 먼 곳이다. 나는 J사 부설 연구소에서 군용 무전기 국산화 개발에 전념했다.

이듬해 아들을 낳자 부모님도 진주 집을 처분하고 올라오셨다. 3대가 한집에 살면서 손자 재롱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독실한 불교 신자셨던 어머님은 위암으로 일 년여를 고생하시다가 운명하셨다. 그때 아내는 세 살 터울의 둘째를 임신 중이어서 배가 불렀다.

둘째 아들이 세 살이 되자, 전직 초등학교 교장이던 아버님의 권유로, 아내는 양호교사 임용고시에 응시해서 합격했다. 일부러 인천 영종도의 서쪽 끝에 붙어있는 외딴 초등학교에 지원했는데, 도서(島嶼)나 오지(奧地)에 1년간 근무하면 희망하는 학교로 전근이 가능해서였다.

마침 학교 관사에서 아버님과 두 아들도 함께 기거할 수 있었다. 오산 집과 영종도의 학교는 두 번의 시외버스로 세 시간, 배를 타고 30분, 다시 버스로 한 시간을 가는 거리에 있었다. 그때는 토요일도 오전에 근무하는 반공일이어서, 토요일 오후에 교대로 오고 갔다.

갈 때는 인천 연안부두의 마지막 배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야 했다. 저녁때 도착하여 다섯 식구가 함께 식사하며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애들과 바닷가에 나가 놀다가, 점심 먹자마자 아쉬운 이별의 손짓을 나누며 버스에 올라야 했다. 철없는 둘째는 아빠와 안 헤어지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아내가 아버님 모시고 두 아들과 함께 오산으로 올 때는 섬에서 나는 해산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나 혼자의 2주일 치 반찬으론 너무 많아서 가까운 이웃과 나눠 먹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낸 뒤 원하던 수원의 초등학교로 발령이 났고, 아내는 중등과 고등학교로 진출하며 24년을 보건교사로 충실히 근무했다. 집에서 손자들을 돌봐 주시던 아버님은 장손이 대학생이던 새천년에 92수로 타계하셨다.

교육원 수업은 강의 50분에 쉬는 시간 10분이다.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오전 오후 각 4시간씩의 강의를 마치고 집에 오면 통상 6시쯤 된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주야간 모두 강의하는 날이 일주일에 나흘이나 되었다. 야간 4시간 강의까지 끝내고 오면 거의 밤 11시가 된다.

칠순이 된 올해는 기력이 달려 야간 강의를 많이 줄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인데, 금요일인 오늘은 야간 강의가 없는 날이다. 아내는 퇴근 때 가방에 먹을거리를 잔뜩 넣어 온다. 교육원의 나이 많은 수강생들이 갖다 주는 주전부리와 반찬이다.

나는 가방에서 빵, 과자, 과일, 반찬 등을 꺼내는 일이 재미있다. 부실한 치아로도 먹을 수 있는 말랑한 ‘양갱’이 제일 반갑다. 오늘은 또 뭘 가져오려나? 기대하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뭔 일 있어요?’ 가끔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와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느라 조금 늦게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오늘 늦겠어요.’라는 문자를 꼭 보내온다. 내가 7시경에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쌀독을 열고 쌀 한 컵을 퍼서 냄비에 부어 담았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두 끼분이다. 찬물에 여러 번 문질러 씻고 헹궜다. 아내는 당뇨가 있어 오래전부터 잡곡밥을 먹는다. 한 번에 여러 끼니를 전기밥솥에 따로 지어 밥통에 넣어 둔다. 내 밥은 가스 불로 짓는 냄비 밥이라 금세 다 되었다.

7시 30분이 됐는데도 아내의 답신이 없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괜히 불길한 상상이 몰려온다. 잠깐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벨이 여러 번 가는데도 받지 않는다. ‘강의 중이라 못 받을 수도 있겠지?’ 가끔 다른 강사 대신 갑자기 강의하기도 한다.

얼른 끊고, 잠시 기다려도 역시 응답이 없다. 음습한 예감이 다시 엄습해온다. 저장된 교육원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다른 직원에게 물어볼 요량이다. “북-, 북-, 북-” 그런데, 벨이 열 번도 더 울렸는데도 받질 않는다. ‘야간 수업 없나 보네!’

‘아니면, 강사만 강의실에 있고 사무실 직원은 다 퇴근한 건가?’ 강의는 사무실에 붙은 강의실 외에 위층 강의실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 ‘혹시 오다가 저당이 와서 길에 쓰러진 건 아닐까?’ 그랬다면 행인이 발견해서 급히 119를 불러 병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전화 연락이 왔어야 옳다.

‘설마, 어둡고 외진 곳에서...’ 학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20분 거리다. 여기는 큰 공단이 있는 도시라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전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더러 있었다. 요즘은 불경기에다 ‘코로나 19’ 여파로 도시의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밥 먹는 게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일인지 얼른 확인부터 해봐야겠다. ‘우선 교육원에 가서 강의하고 있는지 확인하자!’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데 별의별 망측한 생각이 다 든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떡하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진작 그만두라고 말렸어야 했는데!’ 후회막급이다. 평생 고생만 한 아내가 불쌍해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안쓰러움에 억장이 무너진다.

집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 확인차 한 번 더 송신 버튼을 눌렀다. “북-, 북-” 벨 신호 가는 소리가 들린다. 조마조마하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요? 무슨 일인데?” 이런! 반가운 아내의 목소리다. “문자 못 봤어? 무슨 일 있는가 싶어서...”

“아침에 야간 강의 있다고 했는데?”

“그랬어?” 아침에 늦잠 자다 일어나 잠결에 배웅했었다. ‘그래도, 응답 전화 한 통 좀 해 주지!’ 야속하고 미워죽겠다. 하지만,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고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