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창 #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공무원의 창 #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5.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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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전 마포구 국장
양승열 전 마포구 국장

[시정일보] 몸도 마음도 세상일에 휩쓸리며 소진되던 시절, 난 3년 동안 가지 못했던 하계휴가를 템플스테이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해 10월, 경기도 양주 도리산 깊은 곳의 ‘육지장사’라는 사찰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부처님 좌우로 지장보살 세 분을 모셨다고 해서 육지장사라고 한단다.

절집에 도착하니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달랑 나 한 사람이었다. 창건한 지 10년밖에 안 된 절이라 그런지, 휴가철이 지난 평일이라 그런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울산에서 봉사하러 오셨다는 막내 스님의 후배라는 분이 있었다. 고색창연함은 없어도 웅장한 규모와 유리창을 갈아 끼운 듯 말간 풍경이 눈앞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걱정이 없진 않았다. 개별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도 처음이지만, 단식 체험도 생경했기 때문이다. 사바를 떠나기 하루 전부터 시작한 위장 비우기는 내내 엄수해야 했는데, 공양간 앞에서 다른 이들이 식사하는 장면은 부러움을 넘어 쓰라림까지 주었다.

나는 유난히 절밥을 좋아한다. 특별한 미식 대신 내게 차려진 것은 하루 세 번의 찻잔. 하얀 쌍화차 찻잔엔 당근 주스와 산초가루를 섞은 차가 일용할 양식의 전부였다. 스님은 곁에 모래시계를 두고 티스푼으로 떠서 30분을 꽉 채워 꼭꼭 씹어 먹으라 했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오면 물배를 채우라신다. 다행히 그 절에는 ‘모유정’이라는 샘물이 있어 약수는 넉넉하게 마실 수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 3년 만의 휴가철에 이 무슨 개고생이란 말인가. 나는 지치고 공허할 때마다 영적인 감각을 얻기 위해 흔들렸다. 하지만 스님들은 영적인 수련 이전에 육신을 비울 것을 요구했다. 보살님으로 보이는 분에게 허기가 져 한 컵 더 줄 수 없느냐고 매양 졸라 대도 돌아오는 건 “큰스님 아시면 저도 잘려요. 자신을 위해 참으세요.”라는 야박한 대답이었다.

산에 들어오고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오는 장면을 자주 곱씹었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는 강제수용소에서 몇 숟가락밖에 안 되는 죽과 멀건 수프,

제대로 굽지 않은 딱딱한 흑빵만을 먹으며 견뎌야 했다. 굶주림이 일상이 되자 그는 방만했던 시절을 반성하며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감자를 번철에 구워 몇 개씩이나 먹고 야채 죽은 몇 대접씩, 식량 사정이 좋았을 때 고깃덩어리는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게다가 우유는 배가 터지도록 마셨다.”

불과 며칠 전의 배둘레햄 내 모습 아니던가. 이런! 이곳은 소비에트의 시베리아 노동수용소도 아니고, 난 강제로 끌려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슈호프보다 더 많은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유럽을 향한 창문으로 네바강 하구의 늪지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했다. 서구화를 추구한 개혁·개방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식문화는 이전에 음식을 즐길 만한 여력이 없었던 도스토옙스키를 포함하여 푸시킨, 곤차로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체호프, 불가코프,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등 19세기 전후 대문호들의 작품에 스미게 된다.

특히 고골은 식도락을 넘어 크지 않은 체구임에도 보통 사람보다 두세 배를 먹는 대식가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37세에 신앙생활에 돌입하면서 굶주린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 ‘육체의 양식’을 거부,

44세에는 영양실조로 돌아가시기에 이른다. 나는 왜 지금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결핍과 육체적 고통은 잠들어 있던 인간의 영혼을 깨우기도 한다. 나는 스스로 주문한 불편함을 견디며 나를 깨우고 있다. 앞으로 먹고 자는 일에서만큼은 무기력한 ‘오블로모프 기질’과 거리를 두겠다고 다짐한다. 108배는 번뇌의 가짓수만큼이라고 한다. 잔동작에만 길들여진 나는 반시간 남짓한 오체투지로도 기진했다.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나섰던 대웅전 마당. 새벽 5시에 바라본 하늘은 내가 보아 왔던 그 하늘이 맞나 싶었다. 산마루에 걸터앉은 그믐달 위로 불두화 같은 별이 초롱초롱, 뼛속까지 시리다. 108배마저도 나는 나를 위해 기복(祈福)했다.

그런 내가 감히 수도자의 마음을 알겠는가만 스님과의 숲길 포행 명상에서는 알 것 같았다. 서로 하고 싶은 말, 그 마음을 꺼내 보이지 않아도 우린 충만했다. 누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였는가? 마하가섭존자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듯 분위기 깨지 말고 입 다물라 한다. 장자도 이런 것을 호접몽이라고 했겠다.

가끔 공사 소음과 까마귀 소리가 거칠게 방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모든 것이 적요하기만 했을 것이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오가다 주운 밤이 어느새 한 됫박이 되었다. 창건 회주이신 지원 스님의 시비 「만월」 중 제2연에 마음이 머문다.

“석등에 불 밝히어 / 어둠을 / 쓸어내고.”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는 스님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스님 저작의 『100세 건강법』에 나오는 말이다.

“식물들은 뿌리를 통해 무기미네랄을 유기미네랄로 바꿉니다. 인간은 식물의 수분을 통해서 미네랄을 흡수합니다. 따라서 채소, 과일만 잘 챙겨 먹어도 웬만한 질병은 예방할 수 있습니다.”

허겁지겁 먹지 말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꼭꼭 씹어보세요, 적게 먹고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환속(?) 해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제1계명으로 가슴에 새긴다. 현실에 얽매인 근시안은 발등에 떨어진 촛농 같은 것. “개념의 본질은 ‘부재’에서 여과 없이 보인다.”라고 했던가. 배고파 보니 먹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고, 생각을 비우려 보니 내 집착이 얼마나 검질긴지 알았다. 검약하게 먹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 산에서 내려오는 날, 속세의 사물들이 맑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