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창 #3 어매, 어디쯤 가셨습니까
공무원의 창 #3 어매, 어디쯤 가셨습니까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5.1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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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전 마포구 국장
양승열 전 마포구 국장

[시정일보] 집은 흩날린 아까시꽃으로 하얀 눈을 덮어쓴 것처럼 보였다. 적막한 파주시 보광사 법당에 홀로 앉았다. 이따금 저 혼자 삐걱거리는 문소리와 풍경소리가 멧비둘기의 울음에 섞여 법당 바닥에 고였다.

어머니가 가셨다. 일흔여섯 한 자 한 자 눌러 박은 작은 수필 책 몇 권만을 남겨 두고. 어떤 슬픔은 세월에 먼지가 앉듯 그렇게 흐려진다지만, 나는 쉬이 그러지 못했다. 가슴 언저리 한끝이 늘 저렸고 목울대에서 울컥거리다 떨리는 한숨으로 나왔다.

묵정밭과 뻘등(갯벌)의 갯고랑으로 흘려보낸 청춘이 아쉬웠던 당신은 이순이 넘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셨다. 서울 이화동 낙산의 비탈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낡은 학원 하나. 그곳에서 어머니는 글을 배우셨고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당신의 언어를 하나씩 풀어놓으셨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배워야 했던 ‘히라가나’ 대신 ‘가갸거겨’를 배우시던 어머니는 제일 먼저 당신의 공책에 자식들 전화번호를 바느질하듯 엮어 놓으셨다.

언제였을까. 어머니가 수화기를 들고 백로지 공책을 펼쳤는데, 그 안엔 지렁이처럼 꼬불꼬불한 우리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신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러움과 서운함으로 이마를 떨구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게 항상 ‘하얀 등’이셨다. 저 멀리 고랑을 따라 하얀 등이 폭염의 아지랑이 사이로 흔들리시거나 부뚜막 생솔이 타면서 내는 자욱한 냉갈(연기) 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하얀 등으로 쪼그리고 계셨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날 앉혀 놓고 “복심아 보아라.”로 시작하는 편지를 대필하게 하셨다. 서울의 큰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어머니가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될 일을 쥐방울만 했던 나는 성을 내며 툴툴거렸다. 떠오른 생각을 스스로 쓰는 것과 누군가에게 연필로 대필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말과 글의 차이에서 오는 뉘앙스의 변화. 어머니는 당신의 뜻대로 옮기지 않는 나를 답답해하셨고, 나는 글로 적기 쉽지 않은 당신의 언어를 들을 때마다 골을 내곤 했다. 적어도 편지를 쓸 때만큼은 어머니는 내게 철저한 ‘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손수 쓰신 글을 보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더는 어머니께서 내 앞에 앉아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말을 전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시던 말씀을 끊고 밤하늘 저편을 살피는 모습도, 당신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글로 옮겼을 때 대견하시다며 바라보시던 그 눈망울도 더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날 어머니의 치부책은 내겐 뼈가 저미게 아픈 그 무엇이었다.

명지바람이 수수꽃다리를 흔들던 어느 봄날. 어머니는 가셨다. 당신의 뜻대로 화장을 했다. 벽제 승화원의 전기로에 담긴 어머니의 몸은 1시간 30분 만에 앙상한 유골로 나오셨고 몇 주먹도 안 되는 재로 변한 당신은 하얀 단지 속으로 들어가셨다. 하얀 재 안에 금속 막대 하나. 돌아가시기 몇 해 전 대퇴골 골절로 수술 받으며 박아 넣은 그것을 보며 나는 다시 울며 기진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노트 몇 권이 남았다. 그날부터였다. 당신의 집에서 챙겨 온 노트를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영락없이 앞이 흐려져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멈춰야 했다. 길을 걷다가도, 일하다가 문득, 자다가도 일어나 그 노트를 펼쳤다. 어머니의 노트에 코를 대면 뻘 냄새와 농약 냄새, 땀 밴 몸빼 냄새, 꽁보리밥 가마솥에 허리띠 두른 시루번 냄새가 났다. 그리고 책장을 펼치면 비 오는 날 기스락에서 부서지던 어매의 구슬픈 장탄식이 바닥으로 흐르곤 했다.

노트에 담긴 활자가 점점이 심장을 찔러 대길 여러 날. 나는 그 낡은 책을 서랍 깊숙이 넣어 놓았다. 저 표정, 저런 눈매였나. 결곡한 유관순 누나 같은 모습의 액자 속 어머니를 보며 나는 자꾸만 흐려지는 당신과의 기억을 소환하려 안간힘을 썼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곧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역마살로 유유자적하며 전국을 유랑하다 집에 와선 장취불성(長醉不醒)으로 이승의 문을 영영 닫아버린 아버지를 끄집어내어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쓰며 가슴을 치다 쓰러져 울곤 했다.

어머니가 가실 때 외롭진 않으셨을까. 어머니의 혼은 지금 어디쯤 가있을까. 왜 나는 그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봄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을까. 왜 그날 기운이 없던 어머니를 모시고 좋은 음식을 해 드리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때 안 먹겠다는데도 “그래도 조금만 먹어라”고 재촉하시는 어머니께 화를 냈을까.

어머니가 가신 그해 나는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질문을 모두 소진했다고 생각할 때 불쑥 새로운 질문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영혼이 사람의 육신에서 빠져나갈 때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 혼불로 보인다고 한다. 대빗자루 모양의 꼬리 달린 불덩이는 남자의 혼불이고, 접시 모양의 둥글고 작은 불덩이는 여자의 혼불이다. 혼불이 집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그 집엔 어김없이 초상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혼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아파트 숲에 홀로 갇혀서였을까. 우린 망인의 죽음을 알리며 옷을 지붕 위로 던져 올리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분명 물비린내도 없고, 대숲을 흔들며 달리던 바닷바람도 없는, 이 삭막한 철근콘크리트 안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으셨을 것이다. “용게댁”을 외치는 고향 동무들 품에 안겨 꽃동산 너머 옥색 바다 위를 날아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까까머리가 되고 맞이한 중학교 수학여행, 한 학년이 700명이 넘던 중학교에서 나 하나쯤 빠진들 무슨 표시가 나겠는가마는, 난생처음 태 자리를 벗어나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강원도의 꿈에 들떠 흥분했다. 하지만 며칠 안 가 굴참나무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등을 보면서 꿈을 접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그때 꼭 가겠노라고.

내가 S그룹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제일 먼저 고향 이장 댁 느티나무에 매달린 확성기로 마을에 전해졌다. 그때 어머니는 산비알 골짜기에서 뚝새풀을 거둬 내느라 내 소식을 듣지 못하셨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옆집 동무 엄마가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날 어머니는 정화수 치성을 드리던 뒤꼍에서 한참을 끄억 끄억 흔들리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소년이었을 땐 “막둥이 장가갈 때까지만 살아야 쓰겄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셨고, 내가 결혼한 후엔 “제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라며 당신께서 아직까지 살아 계심을 겸연쩍어 하셨다. 노인의 “죽고 싶다”는 푸념은 순전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의 그 어색한 거짓말이 해마다 계속되기만을 바라며 살포시 미소까지 지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어머니는 겨울철 가시나무처럼 마르기 시작했고, 자주 누워 계셨다. 그때마다 나는 불현듯 엄습하는 두려움을 일부러 떨쳐 내려는 듯 “잘되겠지” 하며 내일도 언제나 같은 날이 이어질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곤 했다. 상투적이고 오래된 옛말. “부모님 가시고 나서 하는 효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 말. 난 이제 어쩌면 좋나.

어머니는 당신 가시면 산새의 모이가 되게 뿌려 달라고 하셨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 지긋지긋한 고통과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훨훨 날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역마살에 밖으로만 도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원망하셨다. 아버지의 고향이 영암인데,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이었다. 노랫말에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이라는 대목이 있다. 어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며 젊은 시절 온전했던 아버지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식들은 끝내 알 수 없는 부부간의 연정이 그 시절에도 남아 있었던 걸까.

환생하신다면 어머니는 무엇으로 다시 오실까. 평생 검약하며 오 남매에게 희생하셨던 어머니. 그렇게 정 많고 올곧으며 이타적인 분의 다음 생은 어떤 모습일까. 법당 밖으로 나오니 하얀 꽃바람이 불었다. 어머니의 전생이 작은 석탑 둘레를 돌다 사라졌다.

제망모가

“삶과 죽음의 길이 / 여기 있음에 두려워하고 / “나는 간다”라는 말씀도 / 못다 이르고 가셨습니까

어느 여름 무르익은 햇살에 / 무성히 우거진 갈매 잎 같은 / 어머니의 크신 사랑받고서도 / 당신 가는 곳을 전 모르옵니다 / 아아, 극락에서 만나 뵐 때까지 / 도를 닦으며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