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인문학광장 #6 전국 노래자랑
시정 인문학광장 #6 전국 노래자랑
  • 이재영 ㈜뉴런 대표이사
  • 승인 2023.05.2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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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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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그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을 큼직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선선한 가을을 맞은 각종 행사가 전국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를 막 지난 금요일 오후, 산책과 운동을 하러 나갔던 아내가 돌아와 웃으면서 물었다.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던데 당신 한번 나가 볼래요?”

“어디서 여는 건데?”

“내가 현수막을 찍어 왔어요.”

아내는 핸드폰을 열어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대충 훑어보니 이웃한 동의 주민센터에서 주최하는 동네 페스티벌이다. 주말 오후와 저녁나절에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막아 먹거리 장터를 만들고 노래자랑대회를 개최하여 주민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동네잔치다.

내가 사는 경기도 S시의 인구는 40만 명 정도인데 주민센터는 17개가 있다. 2년 전에는 번화가가 있는 인근의 다른 주민센터에서 개최한 유사한 페스티벌인 ‘로데오거리 노래자랑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노래자랑대회에 신청하여 예선을 통과하고 12명이 참가하는 본선 무대까지 올라갔다. 주민센터 강당에서 열린 예선에는 백여 명이 참가했는데, 나는 가수 나OO 씨가 부른 ‘영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막아놓고 주민 수천 명이 참석한 행사 당일의 본선 무대에서는 홍OO 가수가 부른 ‘황제를 위하여’로 선전했는데, 상금을 수십만 원씩 주는 4위 이내에는 들지 못하고 몇만 원짜리 참가상 티켓만 받았다.

“이거 지난번 대회랑 비슷한 거잖아? 안 할래!” 나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때 괜히 실속도 없이 시간만 많이 낭비했던 기억이라 노래자랑대회에 다시 나갈 흥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볼 일이 있어 혼자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건물 입구 게시판에 모 TV 방송국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인 송O 선생이 활짝 웃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내가 사는 S 시 편에 관한 안내장의 흑백 복사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내는 이걸 미처 못 봤던 모양이다. ‘흠, 저거나 한번 나가 봐?’ 보는 순간 솔깃했다. 동네 노래자랑과는 격이 다른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회고, 본선에 진출만 해도 티브이 방송에 나오게 된다.

일정을 보니 오늘이 참가 신청 마감이고, 다음 주 목요일 예선전에 이어 이틀 뒤인 토요일에 본선이 열린다. 불과 몇 주일 뒤면 내가 티브이 화면에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선 참가자는 지난번‘로데오 거리’의 두서너 배쯤 될 거니까 예선 통과는 무난할 거고 티브이 방송 출연은 확실해 보인다.

‘잘하면 장려상 정도는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까지 떠올랐다. 머릿속에는 나 혼자 출전한 것이 아니고 아내와 함께 듀엣으로 부르고 있었다. 곡목은 나의 18번 애창곡인 ‘외나무다리’를 부른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고 최OO 씨의 노래 중에‘단둘이 가봤으면’이란 곡이다.

첫 소절은‘흰 구름이 피어오른 수평선 저 너머로 그대와 단둘이서 가보았으면’으로 시작된다. 아내와 대학 시절에 데이트할 때 가끔 부르곤 했는데, 아내는 중간중간에 끼어들며 하모니를 맞춰준다. 아내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같은 반이고 내가 반장일 때 부반장도 했다.

대학교도 같은 대학교 다른 학과를 나왔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신 늦둥이 외동인 나는 졸업하자마자 스물세 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43년 넘게 살고 있다. 볼일을 마친 나는 곧장 주민센터에 들러 참가신청서를 접수했다. 접수하고 오면서 예선 통과하면 자식들에게 연락해서 플래카드를 준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내 자식, 며느리들과 예쁘고 영민한 손녀가 티브이에 얼굴을 비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잘난 아비의 어깨까지 우쭐거려졌다. 일주일 뒤 나는 모 TV 방송국이 주최한 ‘전국 노래자랑’ 예선을 가뿐히 통과해서 열댓 명이 참가한 본선 무대에 진출했고 구순이 넘은 사회자 송O 선생과 인터뷰를 했다.

“아하, 이런 기특한 부부도 다 있군요! 자제분은 몇이나 있어요?”

“아들 둘에 며느리 둘이고, 초등 4학년에 다니는 손녀가 있습니다.”

“혹시 응원하러 나왔어요?”

“예. 저~기, 전부 나와서 플래카드 흔들고 있네요.”

자랑스럽게 대답한 나는 가족의 응원 속에 아내를 쳐다봐 가면서, “하얀 돛단배 타고 물새들 앞세우고,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섬을 찾아서……” 신청곡‘단둘이 가봤으면’을 닭살 돋게 잘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송O 선생은 다시, “초등학교 동창끼리 캠퍼스 커플로 결혼하고 4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다정히 노래 부르는 모습, 정말 보기 좋지요? 여러분, 큰 박수 보내주세요~!”라며 우리를 격려해줬다.

심사 결과 장려상을 기대했던 우리는 과분하게도 우수상을 받았고, 친인척과 지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느라 한동안 바빴다. -라는 글을 쓰고 잘 살아온 내 인생을 실컷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예선전 당일 지정된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막상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 봤더니, 내가 아직도 철이 덜 든 유치한 이삼십 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의 이목이나 받고 희희낙락하는 과시욕에 찌든 철부지 말이다. 이제 60대 후반이 됐으면서 아직도 그런 천둥벌거숭이 짓거리에 빠져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이 세상 크고 작은 문제의 대부분 원인은, 남보다 조금 나은 자신의 장점을 부각해 돋보이고자 하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순간의 들뜬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칠순(七旬)도 되기 전에 공자(孔子)님 말씀처럼 종심소욕(從心所欲)해서 전국적인 큰일을 덜컥 저지르고 말았으니 불유구(不踰矩)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부끄러운 일임엔 분명하다.

자칫했으면 애먼 자식들까지 들러리로 세울 뻔했다. 두서너 주일 후 일요일 낮에‘전국 노래자랑 S시 편’이 방영될 것 같은데, 가벼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만약 출전했다면 몇 위쯤이나 됐을지 점수나 매겨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