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인문학광장 #7 제1 편집자
시정 인문학광장 #7 제1 편집자
  • 이재영 ㈜뉴런 대표이사
  • 승인 2023.05.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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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이재영
이재영

[시정일보] 나는 5년 전에 M 문예지의 신인상 수필 부문에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그 문예지에 꾸준히 글을 써내고 있다. 초기에 썼던 수필의 내용은 대부분 단둘이 사는 아내와 내게 일어난 일상의 사건이 모티브가 되어 전개되므로 항상 아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아내는 대개 현모양처의 착한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약간 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원고를 사전에 아내에게 보이지 않고 보냈고, 책이 나오면 그때 읽어보게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기의 핸디캡이 너무 자세히 드러났다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 그 M 종합문예지는 각 부문의 신인상만 공모하던 계간지였는데, 3년 전에 회원 중 한 분이 상금을 후원하겠다고 나서면서, 당선 상금이 있는 ‘소설문학상’을 제정하여 연례행사로 공모하게 되었다.

외부에서 저명한 소설가 S 씨를 초빙하여 심사위원에 위촉하였고, 문예지 가을호 출판기념식과 함께 ‘제1회 소설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소설문학상 당선자와 부문별 신인문학상 당선자에 대한 상패 수여식이 끝난 뒤에 심사위원 S 소설가의 간단한 축하 강연이 있었는데, 칠판에 쓴 제목이 ‘제1 편집자’였다.

연설 내용을 요약해보면, 작가가 애써 새 작품을 집필하여 출판사나 공모전 주관사에 원고를 보내기 전에, 누군가 먼저 읽어보고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여 솔직하게 비평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아주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첫 번째 독자인 동시에 명철한 조언자이자 선생이기도 한, ‘제1 편집자’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내게 ‘편집자’는 ‘작가가 작성한 원고를 책으로 발간하는 과정에 종사하는 관계자’ 정도로, 오타의 교정이나 페이지 배열을 맡는,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져서 S 소설가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로부터 2년쯤 지난 후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모 웹 소설 플랫폼에 SF 액션 장편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관심이 있으니 출판에 관해 의논하자고 했다. 나는 반가워서 곧바로 수락했고, 다음 날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며 주소지를 알려준 부천시의 D 사로 찾아갔다. 생긴 지 3년쯤 된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본사는 부산에 있고, 부천에는 콘텐츠 사업부가 있었다.

새로 준공한 테크노파크 건물의 7층에 올라가 통화했던 기획실장을 찾았더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새파란 나이의 인상 좋아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응접실로 안내했다. 간략히 인사를 나누고 자기 회사를 장황히 소개하더니, 기존에 출판된 책자를 보여줬다. 만화방에 보급하는 46판 크기의 무협 소설 시리즈로 5권 분량이었다.

“전체 5권 이상이어야 하고, 권당 25회 분량입니다. 회당 글자 수는 5천 자를 넘어야 합니다.”

“아, 그래요? 5권에 권당 25회면 125회 이상이군요. 지금 등재된 105회 중에 5천 자 미만인 회차가 있는데, 회차별 글자 수 조정부터 하고 뒷부분 덜 쓴 20회 분량은 조속히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예. 125회차 이상 집필에 문제없다면 일단 계약은 125회로 하시지요. 그리고 회차 조정해서 수정된 원고를 보내주시면 저희 편집자가 검토하겠습니다.”

“편집자요? 아, 따로 오탈자 수정을 하나 보군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실장은 할 일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을 내 연락 전담자로 지정하는 줄로 이해했다. 잠시 후에 인터폰으로 어떤 사람을 불러 ‘편집자’라며 소개했는데, 이 친구는 20대 후반의 앳된 젊은이였다. 생글거리는 인상으로 보아, 책 표지나 삽화를 그리고 글의 배치와 편집을 맡은 출판 디자이너로서, 문학에 약간의 조예가 있거나 관심이 많은 청년으로 여겨졌다.

신생 회사라서 그런지 눈에 띄는 다른 직원들도 상당히 젊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하여 바로 사인했다. 아래층까지 배웅 나온 두 사람과 함께 셋이서 내 핸드폰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헤어진 후 신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며칠 후에 수정한 원고 10회 분량을 먼저 메일로 그 편집자에게 보냈더니 이틀 후에 메일 답신이 왔다. 그런데, 별첨으로 되돌아온 내 원고를 열어 읽어보고는 약간 놀라서 감탄했다. 단순히 오탈자를 확인한 게 아니고, 글을 완전히 숙독한 후에 문맥상 어설픈 부분을 지적하여, 변경했으면 좋겠다는 문구를 작성하고, 색깔을 달리 한 주석으로 달아두었다.

지적한 부분이 나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족한 내용이었고, 변경 요청 문구도 마음에 쏙 들어서 그대로 따랐다. 어떤 부분은, 친구 두 명이 만나 맥주 여섯 병을 얼른 마신 뒤 2차를 가다가 범행 용의자를 발견하고 차량을 몰아 뒤따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음주운전의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제야 ‘편집자’의 위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전에 S 소설가가 말한 ‘제1 편집자’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당장 “다른 글을 쓸 때도 저런 편집자가 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간혹 문학 카페의 회원들끼리 글을 올려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평가하고 문제 부분을 지적해주는 ‘합평회’라는 방식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잘 보았다는 댓글 정도만 달릴 뿐, 깊이 있는 지적과 비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각자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며 바쁜 삶을 이어가는 인생이다. 자기의 글쓰기에도 바쁜데, 소중한 시간을 내어서 남의 글을 꼼꼼히 읽고 평가해 줄 여유가 과연 있을까? 오죽하면 ‘타임 이즈 머니,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이 있겠는가.

길이가 짧은 시나 시조면 모를까, 서너 페이지가 넘는 수필 이상의 긴 글이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한다. 합평회에 글을 올렸는데 비평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다고 서운해할 일만은 아니다. 자기가 쓴 글을 반추하며 퇴고하는 일은 외롭고 힘든 과정이지만, 어차피 각자가 알아서 할 책무가 아니겠는가?

소설가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60%는 내가 썼고 40%는 편집자 ‘맥스 퍼킨스’가 썼다.”라고 했단다. 그만큼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공짜로 내 원고를 읽고 평가해줄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는데 언감생심, 꿈같은 희망이다. 그런데, 내게 그런 ‘제1 편집자’가 한 명 생겼다. 바로 내 집사람이다.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소설책은 나보다 더 많이 읽었고, 제1 독자로서 내 글에 대해 자기의 느낌대로 솔직히 비평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내 수필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는 약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남들에게 집안 사정이 미주알고주알 노출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그랬는데, 막상 D 사에서 계약금이 통장으로 들어오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서 내 글을 읽어주는 ‘제1 편집자’가 되겠다고 자원했다. 역시 ‘타임 이즈 머니’다. 요즘은 어딘가에 보낼 원고를 출력하여 연필과 함께 건네주면, 돋보기를 찾아 끼고 한참을 읽어보고는, 몇 군데에 자기 의견을 깨알같이 적어 돌려준다. 내 글에 대해 시작부터 관심을 두고 수시로 대화를 나누게 되니 전에 없이 더 다정한 부부가 되는 느낌이라 글 쓰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