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창#30 더디 가도 곧게 간다
공무원의 창#30 더디 가도 곧게 간다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7.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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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상암대첩

[시정일보] 2014년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방송가 인근의 도로는 24시간 불야성이었다. 불법 전대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갔다. 법원·검찰청의 무슨 직책이 새겨진 그럴듯한 명함을 가진 시커먼 조폭이 개입해서 잽싸게 불법건축물을 축조한 일이 발생했다.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이었다.

우린 불법건축물을 눈으로 뻔히 보고도 손쓰지 못하고 당했다. 단속 부서가 어디냐를 결정하다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개발행위 허가제한’인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지에 따라 단속 부서가 달라지다 보니 실무자가 “어어~” 하는 사이 가건물은 올라가고 불법영업이 시작되었다. 해당 부지는 코레일 소관의 철도용지로 국유지였다. 이런 식으로 불법 건축물을 세워 무려 9개 점포가 보란 듯이 밤샘 영업을 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경찰서의 정보과장과 경비과장, 코레일 서울본부 팀장 등과 합동 대책회의를 했으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불법 사안을 점포 주인에게 고지하고 강제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경찰서에선 병력 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물러섰다. 주거지역이 아니었지만 5년 전의 ‘용산참사’를 의식한 것 같았다. 물리적 마찰을 피하고 해당 건물을 철거하기 위해선 순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밟아 가야 했다.

우리 부서는 그해 7월 불법건축주들을 경찰서에 고발했고, 이행강제금(8,400만 원 상당)을 반복해서 부과했다. 이어 예금 및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압류했다. 점주들은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송사는 이듬해 봄까지 이어져 법원에 집행정지가처분에 이어 대집행계고처분 취소소송까지 제기했다.

이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우리는 다시 철거를 위한 대집행을 계고하고 관할 경찰서, 소방서, 한전서부지사, 한국전기안전공사, 서부수도사업소를 순회하며 협조를 구했다. 경찰서와 철거대집행을 위한 시뮬레이션 합동회의를 하는 등 철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마 당시 사업 내용을 세세히 쓰면 백서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결국 철거업체와 함께 행정대집행 직전인 9월 12일에 철거를 마감했다.

2022년 봄에 해당 지역을 갔을 때 해당 부지에는 메시 철망 울타리가 올라가 있었다. 철거 당시 코레일의 서울본부 팀장과 만나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줄 것을 요청했었는데, 7년이 지난 시점에도 무단 점유자 없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바벨의 결탁

2008년 SBS 〈8시 뉴스〉(4월 13일자)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현장의 제보를 받아 부조리를 폭로하던 ‘기동취재반’에서 취재한 내용이었는데,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노점 자릿세는 당연하다? 폭력배 갈취 현장”. 서울 신촌 홍대 거리에서 신흥 폭력배들은 노점상들에게 월 160만 상당의 자릿세를 갈취하며 군림했다. 작은 좌판이면 80만 원, 좌판 두 개면 160만 원 이런 식이다.

자릿세를 거부하면 조폭들은 끌고 가서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짓밟았다. 불법 노점이었기 때문에 노점상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고 한다. 조폭들은 1년 5개월 동안 자릿세를 받아 챙겼다. 조직원 4명이 구속되고 다른 4명은 달아나 당국에서 지명수배 했다. 그런데 그 사건에 가로정비반장(7급)이 연루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소문으론 반장 또한 조폭에게 당해서 빚어진 일이라고 했다. 해당 지역 공무원들은 죄다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조직의 분위기도 흉흉했지만, 서울시에서 이제 막 내려온 나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백지상태인 내가 내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철거팀장에 앉힌 것일까. 아무리 인사명령이라곤 하지만, 사정을 알고서야 누가 그 불지옥으로 뛰어들겠는가. 당시 경찰에 검거되거나 쫒긴 이들 말고도 홍대 거리를 장악한 조폭들은 많았다. 몇 명 사라진다고 거리에 평화가 오진 않았다.

20년간 단속 시늉만 있었지 실질적인 강제집행이 없었기에 홍대와 신촌 거리의 노점상들은 도로를 무단 점용한 영역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오히려 단속 공무원에게 큰소리를 치며 “할 테면 해 봐라”는 식이었다. 불법으로 연루된 터에서 점용면적은 권리금을 받고 유통되었고, 거리를 접수한 조폭들은 ‘어둠의 관리자’ 행세를 하면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조폭들은 심지어 창고 보관의 명목으로 불법 계약서를 작성하게 해 처벌을 모면하려 했다.

홍대 거리의 불법 점포에 대한 철거대집행 절차가 시작되었다. 그해 6월 홍안의 여인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녀는 몇 개월만이라도 시간을 달라고 내게 애원했다. 이럴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행정대집행 영장이 발부되자 그녀는 돌변했다. 수감 중이던 조폭에게 사주를 받은 듯했다. 철거를 하면 현장에서 옷을 발가벗고 저항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33℃의 폭염에 달구어진 도로가 신발 밑창을 악어처럼 집어삼키던 오후였다. 강제집행을 위해 여직원 3명과 트럭 5대가 동원되었다. 다행히 집행 과정에서 불상사는 없었다. 언론에 홍대 조폭들의 기사가 보도된 지 2달 만이었고, 홍대에 불법 노점이 들어선 지 2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나도 시원한 맥주에 땀을 식히며 긴장했던 마음을 눅이고 싶었다.

강제집행 이후 거리는 넓어졌고 깔끔해진 홍대 거리는 젊은이와 예술인들의 낭만의 골목으로 변모해 갔다. 강남과 명동을 핫 플레이스로 즐기던 이들도 점차 홍대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도 상권도 살아났다.

현장의 일을 하다 보면 때로 너무나 오랜 세월 방치되고 곪아 터진, 그야말로 층층이 쌓인 ‘적폐’가 구조적으로 고착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가끔은 우리 사회의 부패 사슬이 저 위의 권력에서 밑바닥까지 얽혀 거대한 비위의 적층을 가진 피라미드로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피라미드 밑바닥일수록 사람들은 더 큰 압력을 받고, 먹이사슬로 엮인 이들의 아귀다툼은 더 치열한 것이 아닐까.

권세를 가졌다고 압력을 가하는 이들이나 다수의 힘으로 목소리를 키워 나를 압박하려 할 때마다 나는 단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공직자.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정도(正道). 옳은 길이면 칼바람이 매섭더라도 직진해야 한다. 정면 돌파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나와 같이 정면 돌파하는 선례가 쌓일 때 그것이 통념이 되고 규범으로 작동할 것으로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