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풍경 /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인
詩의 풍경 /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인
  • 최창일 이미지 문화평론가
  • 승인 2024.04.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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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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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은 음악성을 탐구한 대표적 시인이다. ‘모란’은 부를 상징하는 울안의 감상용 꽃이다. 화려한 모란은 보는 마음속에 찬란하게 피어난다. 영랑은 이 시에서 모란이 활짝 피어난 모습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는 모습을 묘사하여 모란의 화려함을 드러내 보인다. 시의 주제는 마지막 행의 “찬란한 슬픔의 봄”인 모란과 사랑은 같은 속성을 가졌다. 봄 풍경을 화사하게 그리는 점이 그렇다. 내내 기다린 점에서도 그렇다. 사랑은 “찬란한 슬픔의 봄”의 다른 이름이다. 모란이 지고 나면, 시인은 다음 해 봄을 기다린다. 시는 모란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를 모란꽃 자체로, 혹은 잃어버린 조국의 상징으로 고착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영랑은 진정한 봄을 기다리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인물이고, 모란이 질 때면 이번에도 진정한 봄은 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의 시인이다. 이 시는 4음보 율격 구조를 근간한다. 이 시에서 모란은 모호성 때문에 오히려 시적 긴장을 자아내는 제재다. 시인이 맞는 모란은 지난해 모란과 다른 꽃이다. 사랑도 그렇다.


최창일 이미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