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악성민원 연 4만6천건…우울증에 사망까지 후유증 심각
막무가내 악성민원 연 4만6천건…우울증에 사망까지 후유증 심각
  • 신일영
  • 승인 2024.05.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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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6주년 기획 / 죽음으로 내몰린 공무원, 악성민원 해법 없나
전국공무원노조 악성민원 희생자 추모집회, ‘상호존중 안내문’이 부착된 성동구 민원실, 공무원증 케이스 녹음기를 착용한 도봉구 직원, 노원구 방호전담직원 ‘보안관’.(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욕설은 기본, 징계도 요구…‘나홀로 감당’ 한계

정부, 기관차원 적극 대응ㆍ욕설전화 차단 허용

현장에선 “청원경찰 확대ㆍ공권력 강화 급선무”

 

법령 또는 상식적 기준에서 처리가 어려운 악성민원의 폐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 한 초등학교 학부모의 교사 괴롭힘에서 시작돼 최근 경기도 K시 공무원이 악성민원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문제는 악성민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무원 신분상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공무원의 우울증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하며, 국가 행정력 낭비와 민원응대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져 우려를 낳고 있다.

본지는 창간 36주년을 맞아 악성민원의 사례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여권발급 늦었다며 1천만원 배상 요구

# 구청 여권관련과에 근무하던 공무원 A씨는 초년 시절 민원업무를 담당하면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했다. 민원인이 A씨를 찾아와 다짜고짜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 언사와 함께 1000만원을 내놓으라며 소동을 피운것이다. 중국과 교역업무를 하던 이 민원인은 여권 발급이 늦어져 사업상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니 이곳에서 책임을 지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부서의 최고직 공무원이 진화에 나섰지만, 민원인의 억지와 트집에 결국 경찰관이 출동해서야 소동이 겨우 진화됐다. A씨는 이후 한동안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을 앓다가 휴직 후에 복귀했다.

김장김치 못받았다고 한달간 전화폭탄

#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민원인으로부터 거의 한달여 간을 악성민원에 시달렸다. 당시 복지관련과에 근무하던 B씨는 매뉴얼대로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겨울철 김장김치를 배분했다. 이로부터 몇 일 지나지 않아 한 민원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민원인의 부모가 작년에는 김장김치를 받았는데, 올핸 왜 안주느냐는 항의였다. B씨가 조사해보니 민원인의 부모는 대상자가 아닌데, 작년에 양이 남아서 제공된 것이었다. B씨는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민원인은 막무가내였다. 상급 공무원이 나서서 겨우 진화했지만, 민원인은 날이면 날마다 B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업무를 방해했다. 공직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왔던 B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위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악성민원은 ’20년 4만6000건, ’21년 5만2000건, ’22년 4만1600건으로 연평균 4만6000여건에 이른다. 폭언(3만6000건)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협박(3800건), 성희롱 (4400건), 폭행(360건), 기물파손(70건) 이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며 상식적으로 대화가 안돼는 불통형 민원인부터 대량민원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민원인, “내가 누군데”로 시작하는 사칭형 민원인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공통점은 자신이 제기한 민원이 해결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 학연ㆍ지연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하거나 상위기관에 민원을 넣어 공무원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사과로 끝나면 다행이고, 경찰관이 출동해서 마무리되면 정상으로 생각될 정도다.

악성민원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악성민원에 시달린 기억이 있을 것이라는 어느 공무원의 자조섞인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공무원 신분상, 악성민원은 어쩌면 공무원에게 숙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푸념도 나온다.

악성민원을 겪고 나면 우울증 등 정신적 충격은 물론, 휴직과 면직 등 다양한 후유증도 동반한다. 가깝게는 경기 K시의 소위 ‘좌표 찍기’로, 멀게는 2018년 경북의 한 면사무소에서 엽총 난사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행정안전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9%가 악성민원에 대해 ‘고소ㆍ고발 등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81%가 모욕성 전화와 반복 민원, 과도한 자료요구 등 업무방해 행위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17%는 악성민원의 발생 원인으로 공무원 보호장치와 제대로 된 처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악성민원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장에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원하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5월2일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6일엔 그 후속 조치로 ‘민원인의 위법행위 대응지침’을 개정 발표했다. 민원인의 위법행위시 기관차원의 대응이 가능하고, 욕설 등이 섞인 악성민원 전화는 중간에 통화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보면 악성민원에 대해 좀 더 강도 높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먼저 청원경찰ㆍ보안관 등과 같은 보호 인력의 확대다. 현재 청원경찰제를 도입 중인 여러 자치구에선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 공무원의 말을 들어보면 보호 인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있다.

이와 함께 주로 저연차 공무원이 배치되는 민원창구에 고연차 공무원을 배치하자는 의견도 있다. 현재 민원창구엔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취지에서 저연차 공무원이 주로 배치되고 있다. 그러나 악성민원인 대부분이 남자보다 여자, 고연차보다 저연차 공무원에게 그 정도가 심해 문제가 된다.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감정노동자를 존중하자는 캠페인처럼 민원전화에 민원응대 공무원을 존중하자는 취지의 안내메시지를 담자는 것이다.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수동적 대응으론 악성민원 근절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과 호주ㆍ뉴질랜드는 악성민원인의 연락ㆍ방문 횟수 등을 제한하고 있다.

안그래도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 등으로 공무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넘치는 훈훈한 민원창구 모습을 기대해본다.

신일영 기자 / sijung1988@naver.com

 

서울 자치구 ‘공무원 보호’ 팔 걷어

 

청원경찰 배치, 강화유리 가림막 설치

직원이름 비공개, 심리상담, 소송 지원

 

정부는 5월2일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민원인이 욕설 등 폭언시 통화 도중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했고, 위법 행위시 기관 차원의 대응을 허용했다.

각 자치구도 악성민원인에 대비하며 민원응대 공무원 보호 대책을 추진 중이다.

구로구(구청장 문헌일)는 부서 입구에 게시된 좌석배치도 내 직원 사진을 없애고, 구청 홈페이지 직원 실명도 비공개 전환했다.

민원부서엔 강화유리 가림막과 CCTV를 추가 설치하고 민원응대 직원에게 바디캠과 녹음기를 보급했다. 1인당 최대 50만원까지 심리상담과 검사비용을 지원한다.

성북구(구청자 이승로)는 악성민원 발생이 빈번한 구청사 내 민원부서와 동 주민센터에 경찰서 연계 비상벨을 설치 운영 중이다. CCTV 설치, 전화 녹취, 구청사 청원경찰도 배치 중이다.

양천구(구청장 이기재)는 청사 방호 전담 직원을 확대 중이다. 공무원증 녹음기와 바디캠을 대민 접점부서에 배부하고, CCTV 및 민원대 강화유리도 설치하고 있다.

도봉구(구청장 오언석)는 홈페이지와 직원배치도 내 직원 이름과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민원 발생 빈도가 높은 4개 동에 보안관을 배치하고, 민원부서에 웨어러블캠, 공무원증 케이스 녹음기 450개를 배부했다. 피해 직원에겐 1인당 최대 2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금천구(구청장 유성훈)는 대응반ㆍ신고반ㆍ대피반ㆍ채증반으로 구성된 통합민원실 비상대응반을 운영, 피해직원의 구조와 경찰ㆍ119 신고, 직원ㆍ민원인의 신속한 대피를 돕고 있다.

강서구(구청장 진교훈)는 4월부터 주요 주민센터에 안전요원을 배치해 폭언ㆍ폭행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폭력행위를 저지하거나 물증을 수집한다.

강동구(구청장 이수희)는 녹음기와 바디캠 등 보호장비를 도입하고, 휴일 및 비상근무 여성 공무원을 위해 음성인식 비명 감지 시스템을 6개 동에 도입했다.

동대문구(구청장 이필형)는 ‘민원 담당 공무원 몸&맘 챙김 Day’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문 심리상담사의 1:1 심리 상담과 운동처방사의 피지컬케어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도모한다.

광진구(구청장 김경호)는 좌석배치도 및 구청 홈페이지 직원 이름 비공개 처리와 휴대용 보호장비 지원, 악성민원 전담반 운영 및 심리상담 및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는 행복민원실과 동주민센터에 ‘상호존중 안내문’을 부착 중이며, 노원구(구청장 오승록)와 중랑구(구청장 류경기) 등 서울 각 자치구에선 직원 보호를 위해 보호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신일영 기자/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