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하 임춘 문학제‘ 성대히 열려
'2024 서하 임춘 문학제‘ 성대히 열려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4.05.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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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부안임씨 김포총회 주최, 150여 명 참석
25일 서하 임춘 문학제에 참석한 대표들이 모여 합동 촬영했다. /사진 촬영: 임성수 나주임씨 중앙화수회 이사

[시정일보] 지난 25일 경기도 김포 가현산 서하 임춘 묘역에서 부안임씨(扶安林氏) 밀직공파 김포종회(회장 임종광) 주최, 김포신문사 후원, 김포문화원 협찬으로 ‘2024 서하 임춘 문학제’가 150여 명이 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참가자들은 서하 임춘 문학을 오늘에 되살리는 순조 정신에 감탄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으며, 특히 고은 시인, 임헌영 문학평론가, 허형만(목포대 명예교수) 시인은 헌사를 통해 한결같이 서하 임춘의 문학적 세계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하 임춘 문학제는 우리 문학사에 기록될 뜻 있는 축제였다.

25일 서하 임춘 문학제에서 부안임씨 밀직공파 김포종회 임종광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 촬영: 임성수 나주임씨 중앙화수회 이사
25일 서하 임춘 문학제에서 부안임씨 밀직공파 김포종회 임종광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 촬영: 임성수 나주임씨 중앙화수회 이사

문학제는 시전행사, 개막식, 헌공다례, 서하 임춘 문학제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개막식에서 임종광 회장은 ”우리는 몇 해 전부터 우리의 가슴속에 짚게 각인되어있는 위대한 천재적 시인이신 서하 임춘의 문학적 깊이를 되새기고 이를 널리 알리며 문학사적 위상을 바로 새기는 새로운 전환적 계기를 마련하고 자 문학제 준비를 추진해 왔고 오늘 그 빛을 보게 됐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는바 처럼 우리 임씨 가문은 고려말 무신 난으로 화를 입어 서하를 비롯하여 많은 선조가 박해당하시고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백호 임제, 임경업 장군 등 외에는 유명 인사가 많지 않아 그 연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당시의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이 관직에 진출하여 세속정치에 휩쓸리기보다는 초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 온 선비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고 선물이라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임국환(전국임씨중앙회 회장), 박윤규(김포문화원 원장), 박태운(김포신문사 사장)의 축사에 이어 손민영(김포다도박물관) 이사장의 헌공다례 축사가 있었다.

이어 원로시인 고은 선생은 헌사에서 ”온 세상 역대 시혼의 비운을 머금고 찬란한 시의 절정에 이르는바 여기 서하의 시와 삶의 기구한 고난이 더합니다.

우리 역사상 비극 시의 명맥 가운데서 바로 임춘 선생의 시 세계가 바람 속의 등불로 꺼져가다가 살아나 그 후손 문중의 벌족을 발판으로 후대 시학의 경이적인 참모습이 발굴되어 이제 당당한 고려 시학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문장 제1의 임춘'이라는 전설적인 김태준의 조선 문학상 속의 1인(一言)이 있거니와 임춘은 그 역작 안의 한 항목 '문인수난기'를 뛰쳐나와 오늘에 이르렸으니 임춘의 시의 세계를 사후로 전개하는 계기가 이 자리입니다.

오늘 문중의 대표 인사와 문단의 제현 그리고 이곳 서하 음택의 연고지 김포 문학 진영의 향토적 명예가 함께 임춘의 시대로 나아가는 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일찍이 시의 행운은 시인의 불운이라는 두보의 체험 출회가 엄연하거나 이로써 서하제(西河祭)의 의의 사뭇 깊다고 하겠습니다. “라고 말해 참석자로부터 뜨거운 찬사 받았다.

임춘(林椿)은 고려의 문인이며, 부안임씨로 호는 서하(西河)이다. 1170년(고려 의종 24년) 정중부의 난(문신 귀족정치에 반발해 일으킨 난)이 일어나자 예천(醴泉)으로 피신하여 곤궁하게 지냈다. 강좌칠현의 한 사람으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일찍 죽었다.

이인로(李仁老)가 그의 유고(遺藁) 6권을 모아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을 편찬하였다.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그의 시문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두 편의 가전체(假傳體) 소설이 전하는데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이 있는데, 국순전(麴醇傳)은 고려 고종 때 서하(西河) 임춘이 지은 가전(假傳)이다. 특히 국순전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명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용은 술을 의인화하여 풍자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국순(麴醇) 가문의 성쇠를 그린 것으로 죽림칠현의 현실 도피적 향락을 중국 사실에 맡기어 정치적 비평도 내포하고 있다. 진후주(陳後主)의 술로 인한 음탕으로 패망한 것을 그려 계세징인(戒世懲人)을 목적으로 했다.

국순의 90대 할아버지에게 청덕(淸德)이 있어 중산후(中山侯)로 봉하게 되어 그들은 비로소 국(麴)이란 성을 얻게 되었다. 순의 아버지는 죽림의 무리 칠현과 교유할 정도의 인물이었으며, 순에 이르러서 그 훌륭한 덕행이 세상에 알려져 임금도 항상 그를 사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강직함과 참회에서 늙고 병들어 죽으니, 순이 죽은 후엔 그에게 자식이 없었으나 후에 자손이 다시 번성했다.

임춘의 ”친구에게“ 시 한 편을 음미해 본다.

십 년을 떠돌아 반생이 지났으니

대하는 경치마다 느낌이 없으랴.

가을 달 봄바람은 시로 엮어내고

나그네 시름은 술로 달래보네.

길이 전할 만한 업적은 없어도

단지 문장만은 일가를 이루었네.

좋은 세상에 한가함 나쁘진 않으나

내 신세 갈수록 어렵기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