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암초, 지방자치 정착 ‘먼 길’
곳곳에 암초, 지방자치 정착 ‘먼 길’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8.05.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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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이대로 좋은가/ 1>지방정부
지난 5월1일 행정안전부 출입기자실. 이날 행정안전부 정창섭 차관보는 ‘지방공무원 1만 명 감축’ 관련, 기자설명회를 가졌다. 2년간 단계적으로 지방공무원 1만 명을 줄이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이날 계획 발표는 중앙정부의 조직개편에 이은 후속조치로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발표 중 시겚틒구에 대한 인사협의권한을 시겣동�넘겨 광역자치단체의 자율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은 공무원 감원계획에 묻혔다. 종전에는 시겚틒구가 4급 이상 조직을 신설할 경우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차상위자치단체인 시·도로 이관한다는 내용은 지방분권 등에 나름대로 적잖은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1991년 의회자치에 이어 1995년 행정자치가 이뤄지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미국의 경제사회학자 Joseph A. Schumpeter는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규정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2008년 한국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걸음마 중이다. 지방자치를 위한 재정과 인사독립, 조례제정 등을 비롯한 법률적 독립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지방자치는 정당자치 또는 정부자치로 평가되기도 한다.
본지는 이에 ‘지방화시대의 대변지’라는 창간취지에 맞춰 한국 지방자치의 부족한 부분과, 정착을 위한 조건 등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편집자주>



=평균 재정자립도 53.6%…경북 봉화군 ‘7.4%’
=지방 자주세원 확충 전향적 방안 마련 급선무


5월1일 시·도의 조직 자율권 확대와 관련, 지방자치단체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발표된 지방공무원 1만 명 감축발표 탓이다. 또 시·도와 달리 시·군·구의 경우 종전과 마찬가지로 시어머니가 없어졌다기보다는 시누이가 새로 생겼다는 인식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일단 광역자치단체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서울시 조직담당관 관계자는 “총액인건비제가 시행된 2007년부터는 4급 이하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에서 신설할 수 있어 눈에 띄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총액인건비 시행취지를 볼 때 조직관련 권한은 대통령령이 아니라 조례로 위임할 수 있도록 해 행정수요에 맞춰야한다”면서 “총액인건비제를 시행하면서 예전의 통제 틀-표준정원제-을 갖고 있는 셈이다”고 덧붙였다.


시·군·구, 조직편성권 거의 없어

자치단체 조직관련 공무원들은 중앙정부가 인력운용의 큰 틀만 갖고, 나머지는 각 자치단체가 행정수요에 맞춰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이번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말이다.
이런 의견은 기초자치단체에서 훨씬 강하다. 서울의 한 자치구 인사팀장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고 행정안전부의 계획을 평가 절하했다. 어차피 서울시에서도 4급은 승인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 공무원을 줄이는 판국에 누가 4급 조직을 신설하려고 하겠느냐”면서 “시·군·구 입장에서 이번 조치는 행정안전부가 생색만 낸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자치구의 인사팀장은 “행정에 대한 반응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면서 반겼다. 이 관계자는 “행정안전부보다는 서울시가 시간적으로도, 업무를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청사신축을 위해 청사건립추진단장 직급을 4급으로 하려고 했지만 당시 행정자치부가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치구 형편을 잘 아는 서울시와 일하기가 편리할 것이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 역시 행정안전부의 이번 조직승인권한의 시·도 이관은 시·군·구에게는 생색을 낸 것에 불과하다고 공감했다.
이번 행정안전부의 인사 관련 자율권 확대조치는 시·도를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는 광역 시·도가 기존 국을 통합해 대국(실 또는 본부, 2~3급)을 설치하는 경우 3급 심의관 T/O를 허용하도록 했고, 기존 행정안전부장관이 행사하던 시·군·구에 대한 협의승인권한과 5급 이하 결원보충 승인권도 시·도지사에게 넘겼다. 또 중앙투자심사 기준금액을 높여 시·도가 시·군·구 투자 사업에 대한 심사기능을 강화했다.
이와 관련, 서울 S자치구 관계자는 “임기 4년인 시·군·구의 장에게 인사와 조직관련 권한을 줄 경우 지난 2006년 총액인건비 시행에 맞춰 강남구와 부천시가 4급을 늘렸던 폐해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행정안전부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결국 행정안전부 대신 시·도가 시·군·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행정안전부의 교부금 교부대상이 아닌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 경기도의 경우 관할 시·군·구에 대한 이들 상위자치단체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그 통제의 정도는 훨씬 강하다.

열악한 재정여건, 의존도 심각

영남대학교 박인수 교수는 “현실적으로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여전히 열악하며, 재원확보가 용이하지 않은 탓에 지방차원에서의 정책추진이나 사업의 수행은 계획단계에서 좌절되거나 소규모화 할 수밖에 없는 단계”라고 규정했다. 박 교수는 “이 결과 지방자치단체는 특정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그 사무가 설령 지방사무라고 하더라도 국고 등 국가재원확보를 위해 사업계획 단계부터 중앙정부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일상화됐으며, 이는 지방자치 본질측면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특색 있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는 지방 육성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글은 박인수 교수가 지방행정연구소가 발간하는 <자치논단> 2007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이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 한국 지방자치의 한계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꼬집었다. 열악한 재정환경, 그리고 중앙정부가 지원을 멈추면 파산하고 마는 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엄연한 현실이다.
2007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53.6%이다. 일반회계 총계예산규모가 82조5349억17만원이며 지방세가 34조871억5600만원, 세외수입은 10조1399억9700만원이다. 살림살이의 46.4%는 중앙정부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별로 보면 서울특별시가 88.7%로 가장 높고 광역시 62.2%, 도 34.9%, 시 39.5%, 군 16.6%, 자치구 37.5%이다.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 서초구로 90.5%이며 가장 낮은 곳은 경북 봉화군으로 7.4%에 불과하다. 광역시 중에는 인천시청이 67.7%, 도는 경기도청이 66.5%, 시는 경기 성남시가 71.7%로, 군은 울산 울주군이 49.6%로, 자치구는 서울 서초구가 90.5%로 각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재정자립도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엄밀하게 따졌을 때 재정자립도보다는 기준재정수요충족도가 재정여건을 설명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재정수입의 자체충당능력을 나타내는 세입분석지표인 재정자립도는 일반회계의 세입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로 측정해 비율이 높을수록 세입징수기반이 좋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도 또는 중앙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책수립에 있어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게다가 2001년 평균 57.6%인 재정자립도는 2004년 57.2%, 2006년 54.4%, 2007년 53.6% 등 계속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자체수입 대비 인건비는 전국 평균 20.5%에 불과하고, 자체수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전국적으로 38곳(시 4, 군 24, 자치구 10)으로 전체의 15%에 이른다.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곳은 훨씬 많은 140곳(시 16, 군 69, 자치구 55)으로 56%나 돼 중앙정부의 교부금 등의 지원이 없으면 기본적인 살림도 꾸려나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방소비세 신설 움직임 ‘숨통’

지방정부와 관련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재정의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거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기우 인하대학교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이 강력한 분권의지에도 불구하고 중앙정치권이나 관료들의 반대로 국세 재조정을 통한 지방재정 확충, 국가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이양 등 지방분권 정책이 실현되지 못했다”고 ‘우리나라 지방분권 정책의 성과와 한계’에서 밝혔다. 그는 특히 “재정분권은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고보조금이나 지방양여금을 대부분 폐지, 교부세로 전환해 재정자율성을 어느 정도 높였지만 자주재원 확보에는 실패해 지방분권의 물질적 기반을 확보하는데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정부 등의 이런 요구에 대해 최근 전향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5월말쯤 지방소비세를 신설하고, 소득할주민세를 지방세원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지방자치의 물적 토대가 마련될 지 관심이 집중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방이양추진위원회 6월 종료
10년간 국가사무 1481건 이양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은 지난 1991년부터 추진됐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는 당시 총무처(현 행정안전부와 통합)를 중심으로 각 부처와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지방이양합동심의회’에서 추진, 2008건을 이양했다. 그러나 중앙주도에 의한 사무이양이 법적·제도적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1991년 1월 <지방이양촉진법>이 제정됐고 그 결과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구성돼 현재 제4기가 활동 중이다.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1998년 이후 본회의 48회, 실무회의 220회, 워크숍 및 전문가토론회 등 69회에 이르는 회의를 거쳐 10년간 1481건의 국가사무를 지방에 이양했다. 이 중 1189건은 법 개정까지 완료했다.
지방권한 및 자치역량을 강화하고 자율과 분권이라는 지방자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그러나 새 정부의 위원회 통·폐합 조치로 금년 6월 국회의결을 거쳐 법률이 개정될 때 사라지게 된다. 당초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앞으로 지방분권 촉진을 위해 ‘사무배분 사전심사제’를 도입하고 위원회 의결정족수를 완화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지방이양은 지방분권의 3대 추진원칙인 ‘선(先)분권, 후(後)보완’과 ‘보충성’ 및 ‘포괄성’을 바탕으로 심의됐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은 정책기능, 지방은 생활자치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능을 배분하고, 관련기능을 총체적으로 이양해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도모하며, 지방 및 주민과 가까운 기초자치단체에 배분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8년까지 1481건을 이양했다. 연도별로는 2000년까지 185건(완료 2건), 2001년 176건(92건), 2002년 251건(146건), 2003년 478건(164건), 2004년 53건(204건), 2005년 203건(436건), 2006년 80건(43건), 2007년 55건(102건)을 이양했다.
부처별로는 건설교통부가 190건으로 가장 많고 환경부 188건, 해양수산부 128건, 보건복지부 116건, 산업자원부 100건 등으로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같이 지역주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중앙행정기관의 사무들이 많이 이양됐다.
특히 2003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에서 전체의 80%인 949건이 이관돼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가 타 정부보다 월등하게 높았음을 시사했다.
행정안전부 배임태 지방분권지원단장(현 안전기획관)은 지난해 ‘중앙권한 지방이양추진 실적과 과제’라는 기고에서 “지방이양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앙과 지방의 소극적 자세, 법령상 규정된 사무의 사후심사에 따른 한계, 지방자치단체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 미흡, 사후구분체계와 배분기준의 불분명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획일화되고 중앙집권적인 문제해결방식 대신 지방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조성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지방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살리는데 역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