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동‘사무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동‘사무소’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8.09.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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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일 세종로정부종합청사 후문. 여름을 보내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이날, 한 시위자가 보였다. 늘 있어왔던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이 손에 든 푯말에는 ‘대한민국은 센터공화국’이라는 요지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써오던, 그것도 우리말 표현인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바꾼데 대한 항의였다. 이 시위자는 한글학회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8월31일은 한글학회 창설 100주년이었다.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28일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서다. 당시 행정안전부 한범덕 2차관은 2007년 8월27일 기자설명회를 갖고 “동사무소가 복지․문화․고용․생활체육 등 주민맞춤형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환됨에 따라 달라진 기능에 어울리는 ‘주민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9월1일부터 주민센터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때 ‘52년 만의’ 명칭변경에 따른 예산계획과 필요성 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지만 행정자치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시행의사를 분명히 했고 같은 해 10월 성북구 길음2동을 시작으로 전국 시․자치구 지역의 동사무소 명칭변경이 단행됐다.

특히 마지막까지 ‘동사무소’라는 명칭을 간직한 종로구도 지난 7월 <동사무소 명칭과 소재지 및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를 의회에 상정했고, 의회는 7월24일 제186회 임시회에서 조례를 의결했다. 결국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설치되고 1955년 서울시가 행정동제를 실시하면서 사용된 동사무소 명칭은 53년 만에 완전히 폐기됐다. 구 관계자는 명칭변경과 관련, “우리만 혼자 동사무소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유를 집단적 분위기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동사무소라는 명칭을 굳이 동주민센터로 바꿔야 했느냐는 데 여전히 찬성할 수 없다.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청산해야 할 일제잔재도 아니고, 사대적인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센터’라는 외래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중심(中心)’으로 바꿔 쓰는 중국이 더 애교스럽다.

동사무소, 아니 동주민센터 명칭은 법률개정사항도 아니다. 언젠가 더 좋은 말이 생기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용어다. 지난해 명칭변경 때처럼 여론수렴도 제대로 안하고 서두른 것과 달리, 이용자인 국민과 관련 전문가단체의 의견을 모아 바꿨으면 좋겠다. 우리는 ‘센터’ 공화국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