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모두가 함께하는 것으로 꼭 지켜져야
도덕은 모두가 함께하는 것으로 꼭 지켜져야
  • 시정일보
  • 승인 2004.08.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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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是一重公衆物事(도시일중공중물사)니 當隨人而接引(당수인이접인)하며 學是一個尋常家飯(학시일개심상가반)이니 當隨事而警 (당수사이경척)니라.”
이 말은 도덕은 공공의 것이다. 사람을 가리지 말고 이끌어 이행케하라. 학문은 매일같이 먹는 끼니같은 것이다. 마땅히 일에 따라 조심하며 깨우치라는 의미이다. 도덕은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도덕은 혼자서 차지할 수도 없지만 혼자서 또한 이루어질 수도 없다. 그것은 혼자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도덕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져 있어야만 그 존재가 빛을 낼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도덕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것이 설사 그들 개개인의 사유이며 의견일지라도 세계는 별 무리없이 그 의견들을 받아들였다. 칸트는 때때로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보면 잠겨볼수록 더욱 새롭고 더욱 깊이 사이기만 하는 감탄과 숭앙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되는 두가지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그 머리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하늘의 별과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도덕률이라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도덕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좋게 느끼는 것이고 부도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나쁘게 느끼는 것뿐이라며 그것이 그가 느끼는 도덕에 대해 아는 전부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세네카는 도덕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생명을 두려워하는데 있지않고 역경에 대항하여 결코 등을 보이면서 패주하지 않는데에 있다고 했으며 그대의 도덕률을 삶의 무기로 삼으라고 했다. 작금의 법조비리사건을 보면서 가장 청렴하고 도덕률이 앞서야 하는 곳에서 이러한 비리가 만연했다는데 우리는 아연해하지 않을수 없다.
더욱 기가막힌 것은 법조비리를 적발하고도 법원이나 검찰은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처신들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의 도덕률은 어디까지이며 앞으로 누가 누구에게 도덕률을 강조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구심이 들어 씁쓸하기 그지없다. 도덕률은 공공의 것이다. 어떤 집단적 이기주의의 발로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일부이긴 하겠으나 차제의 법조계와 법률시장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 타 어느 부분보다 도덕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공권력을 바로세워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될 때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항간의 속설도 없어질 것이며 모든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밝고 명랑한 준법사회가 열릴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