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들을 술 푸게 하는 것들
공무원, 그들을 술 푸게 하는 것들
  • 방용식 기자
  • 승인 2010.01.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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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鏞植 기자 / argus@sijung.co.kr

2010년이 됐다. 해가 바뀌면서 공직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자리이동이다. 각 기관은 하루가 멀다며 인사발령 사항을 쏴 보낸다.

승진과 승급, 그리고 급여인상은 공무원의 희망이자 소망이다. 급여는 국가경제 차원에서 동결됐고, 근속기간과 자동적으로 맞춰지는 승급을 빼고 나면 승진만 남았다. 인사 때만 되면 절망과 환희가 교차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서울 한 자치구의 사무관 인사가 화제다. 이곳에서는 6급 H팀장이 5년3개월 만에 5급 사무관으로 승진, 동일 부서장으로 임용됐다. 6급에서 사무관이 되려면 서울 자치구의 경우 평균 10년 이상 재직해야 한다. 물론 승진에 필요한 기본연한인 4년을 넘겼지만 남들보다 2배 이상 빨리 승진했다.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국가직공무원도 6급에서 5급이 되려면 평균 7.5년이 걸린다.

승진 이유는 ‘일’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청장 입맛을 잘 맞췄다는 얘기다. 일을 잘해 승진하는 건 당연하지만 ‘입안의 혀’, 또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 귀에 캔디’가 돼서는 곤란하다. 달콤한 말은 곧잘 아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중국 태평성세 중 하나인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룬 당태종에게는 위징(魏徵)이 있었다.

파격(破格)과 발탁(拔擢)에는 언제나 뒷말이 따른다. H팀장 승진을 두고 주변에서는 ‘워낙’ 일을 잘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배가 아파서라고 여길 수만은 없다. 이 자치구와 붙어 있는 D구에서도 구청장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홍 모 국장은 인사 관련 비리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인사권자의 지나친 애정이 가져온 결말이다.

조선을 망국의 위기에서 구한 영웅, 이순신 장군도 주위의 반대로 죽어서야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무신(武臣)에게 정1품 품계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신을 괄시했던 당시 풍조와 질시가 주된 이유였다. 그렇지만 ‘물처럼 흘러야한다’는 인사의 기본원칙이 작용해서라고 생각하면 충무공의 공을 깎아내리는 것일까. 옛일을 알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술 푸게 하는 세상>이란 개그 프로그램이 있다. 그 출연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공무원들도 “코드 맞히는 사람만 좋아하는 구청장(또는 인사권자)”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