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기’ 2%가 아쉽다
‘따라 하기’ 2%가 아쉽다
  • 방용식 기자
  • 승인 2010.04.2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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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용식 기자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 빙수위지이한어수(氷水爲之而寒於水)란 말이 있다. 쪽에서 뽑아낸 물감이 훨씬 파랗고, 얼음물이 얼음보다 더 차갑다는 뜻이다. 제자가 선생보다 낫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 말은 모방(模倣)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곤 한다.
갑자기 떠오른 걷기 열풍과 관련, 자치단체들이 앞을 다퉈 ‘올레길’을 만드는 것도 전형적인 ‘따라 하기’ 행정이다. 서울시는 북한산, 서울성곽 등에 올레길이 있거나 만들고 있다며 선전한다.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한 여성 국회의원은 올레길 조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성동구도 뚝섬 서울 숲에서 남산을 잇는 8km 구간의 도심등산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호조 성동구청장과 직원들은 17일 아침 7시 서울 숲을 출발해 남산까지 걸었다. 이날 ‘아침등산’은 개발검토 중인 도심등산로의 적정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마련돼 3시간 남짓 진행됐다. 아침에 걷기운동을 해 좋았다는 직원들도 있었고, 오랫동안 운동을 쉬었거나 전날 저녁약속이 있던 직원들은 얼굴에 힘겨움이 역력했다.
이날 아침등산을 통해 기자는 ‘서두르면 그르친다(Haste Makes waste)’는 서양속담을 떠올렸다. 뼈대를 만들기도 전에 살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등산로 중 금호동 구간은 차량과 뒤섞여 가야하는 탓에 위험스러웠고, 구석의 토사물은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호당공원에는 공사에서 쓰다 남은 인조잔디가 뒤집어진 채 깔려있었고, 등산로 안내표지는 코팅된 종이로 급조돼 전봇대 등에 대충 붙어있었다.
물론 사업을 본격 시작하기 전이라 ‘섣부른’ 지적이라는 비판이랄 수도 있겠지만, 치밀함이 부족했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몇몇 직원도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되고, 2% 부족했던 ‘따라 하기’의 한계를 보여줬다.
하지만 부족한 2%를 넘어설 때 진짜 따라 하기가 된다. 그래야 또 다른 ‘따라 하기’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공정책의 상당수는 모방에서 출발한다. 노무현 정부가 혁신을 얘기하니 혁신이 전부가 되고, 실용을 말하니 실용이 공공부문에서 화두가 된다. 성동구의 청출어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