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정영섭 광진구청장
단체장칼럼=정영섭 광진구청장
  • 시정일보
  • 승인 2004.09.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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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방자치를 가로 막는가?
우리는 ‘민주주의의 완성은 지방자치의 완성’이라는 말에 익숙해 있다. 우리나라는 37년 전에 지방자치를 실시해 본 경험이 있고 실패한 경험 또한 함께 갖고 있다.
그 당시에는 우리 국민이 지방자치를 수행할 만한 의식수준도 되지 못했고, 지방자치를 추진할 만한 재정적 능력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중단되었다가 9년 전, 1995년에 다시 부활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방자치가 지방화·자율화·자치화에 발맞추어 국민들의 역사적 시대적 바램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가 성숙되어야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저력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는 일천하지만,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해 깊은 관심과 뜨거운 애정을 갖고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주민의 자치의식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자치단체장들의 주민에 대한 봉사정신과 지역발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미래가 밝아질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무엇이 지방자치를 가로막고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관료사회에서 보여 지는 공통적인 병폐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데, 첫째는 획일성에 대한 향수 때문이요, 두 번째는 지시하고 간섭하고자 하는 향수이며, 세 번째는 군림하고 싶은 뿌리 깊은 권위주의의 폐단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우리 행정문화에 만연되어 있어 이 습관을 버리기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각 단체들의 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가 중요한 고비마다 도사리고 앉아 강물을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 틈새에 공무원을 정권창출에 이용하려는 관행을 답습하고 있는 정치권과 공무원을 여권의 시너지로 보아온 야권의 불신풍조가 너무 깊게 자리하는 것 또한 그 원인이 되고 있다. 지방자치를 여권과 야권 양쪽의 도마 위에 올려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여 가슴 펴고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와 광역자치단체는 심술궂은 맏형처럼 변하여 기초자치단체를 도와주려는 마음보다 사사건건 흠집을 내거나 훼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광역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도 정부가 또한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풍조가 바뀌고 고쳐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민선자치시대를 여는 바람직한 궤도를 다져놓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치행정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인사권, 도시개발권 등 행정집행 권한을 제도적으로 적정하게 이양해 주려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는 재정적인 열악성을 보완하기 위해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여 줄 수 있는 세제의 틀을 다시 다듬고, 자치단체 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는 지역실정에 맞는 자치행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치기반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에서 광역으로, 광역에서 기초자치단체로 순리적으로 권한의 배분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가 상호협조하고 조정하는 조화로움이 이룩되어야 행정과 경제와 우리의 삶이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것들이 서로의 주장과 아집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광역을, 광역은 기초를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한 순수한 입장에서 난제를 풀어가려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며, 아픔이 있더라도 과감한 자기혁신과 권한집중현상의 아집을 깨뜨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서울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해보려는 솟구치는 욕망과 열의에 의해 희망적으로 보였으나, 중앙정부나 서울시의 간섭과 통제의 행정관행이나 관치행정의 깊은 잔재의식 때문에 이들과 부딪히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것 모두가 잘해보려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에 누구를 비난할 것은 없다고 본다.
이제 지방자치는 주민의 열망 속에서 힘찬 출발을 시작했으니, 주민들의 미래에 희망을 심어주는 생산성 있는 자치를, 적극적인 주민참여 속에서 완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정영섭 광진구청장 著書
- ‘붓대로 장난질 마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