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채용 선진화방안 ‘돈으로 公職 살까’ 우려
공무원채용 선진화방안 ‘돈으로 公職 살까’ 우려
  • 방용식 기자
  • 승인 2010.08.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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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전문가 특채, “채용 다양성” vs “현대판 ‘蔭敍’ 전락”


민간전문가 특채, “채용 다양성” vs “현대판 ‘蔭敍’ 전락”
공직사회 일부는 고시 폐지 주장…로스쿨 등 문제 살펴야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선발인원 감소에 따른 영향에 촉각을 세운다. 공직 내부에서도 ‘특권적인’ 고시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서로 맞서고 있다.
고시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다양화되고 국민의 교육수준이 크게 향상된 만큼 ‘고시(高試)’로서 ‘고시(考試)’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 반면 고시옹호론자들은 국가발전을 위한 엘리트 공무원 채용통로로 시험 이상의 공정한 평가방법이 없다고 역설한다. 일부는 고시가 폐지되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되는, 사회계층구조의 ‘이동 사다리’가 무너지고, 결국 ‘돈으로 공직을 사는’ 매관(賣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고 경고한다.



행정안전부가 행정고시 선발인원의 50%를 학위 또는 자격증소지자 등으로 선발하는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노량진 공무원시험학원가 모습.
이번에 마련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은 고위공무원 채용경로를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된다.
선진화방안을 보면 행정고시로 선발하는 인원 중 50%를 자격증이나 학위소지자 또는 연구·근무경력자 등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2011년에는 30%로 시작, 해마다 그 비율을 늘려 이르면 2015년에 목표에 도달한다는 계획이다. 필기시험 없이 서류와 면접만으로 선발하고, 행정고시라는 명칭도 없애 단순히 ‘5급 공채’로 바꾼다.

 

이는 공직사회의 상위직급이 고시출신 위주로 구성돼 경쟁이 부족하고, 사회에 대한 인식과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고위공무원단 70.6%, 3급 과장급 57.9%가 행정·기술고시 출신이다. 또 암기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필기시험 위주의 평가방식으로는 공무원의 적성과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렵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평가됐다. 2007년 도입돼 2009년부터 시행된 ‘로스쿨’ 제도와 2013년 사법시험 폐지, 2012년 시행예정인 ‘외교관 선발시험’도 이번 선진화방안의 추진동력이 됐다.
행정안전부는 선진화방안이 시행되면 채용경로가 다양화 돼 공직내부의 경쟁이 활성화되고 공직사회의 체질이 유연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맹형규 장관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현재와 같은 채용방식으로는 21세기 경쟁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며 선진화방안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채용통로 다양화 공직경쟁 활성화


행정고시 선발인원 축소와 그에 따른 부족인원의 민간전문가 채용은 우리나라 고위공무원 선발방식의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고위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시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갑오경장(1895년) 이전 관리가 되려면 과거(科擧)에 합격해야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위공무원 임용통로로서 고시가 시행된 것은 정부수립 1년 후인 1949년 8월12일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 11월26일 첫 시험이 실시됐고 고등고시 ‘행정과’와 고등고시 ‘사법과’로 나뉘었다. 1953년에는 ‘기술과’가 추가됐고 행정과는 제1부 일반 행정, 제2부 재정, 제3부 외무, 4부 교육행정으로 분리됐다.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로 통합된 후 1963년 제1회 기술고시가 실시됐고 ‘사법과’가 ‘사법고시’로 떨어져 나갔다. 1968년에는 외무고시가 시행됐고 민선자치제가 본격 출범한 1995년부터 2003년까지는 지방인재 확보를 위한 ‘지방고시’가 실시되다가 2004년 기술고시는 행정고시 ‘기술직’으로, 지방고시는 행정고시 ‘지역구분 모집’으로 통합됐다.

또 1961년 보통고시를 고등고시 ‘행정과’, 보통고시(4급 을류·현재의 7급 공채), 5급 공무원고시(5급 을류·현재의 9급 공채) 등 직급별로 나눴고 1963년에는 자격시험을 ‘채용시험’으로 전환했다. 행정부의 5급 공무원시험은 고등고시(1951)에서 고등고시 행정과(1961), 3급 공채시험(1963), 3급 을류 공채시험(1968), 행정고등고시(3급 을류, 1973)를 거쳐 1981년 행정고등고시(5급) 등 변화를 거쳐 자리를 잡았다.
시험과목도 시대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늘었다. 1949년 첫 시험 때는 행정법 등 9개 과목이었으나 1982년 교육학 등 13과목이 추가돼 25과목으로 증가했고 1993년에는 불어 등 5과목이 늘어 37과목, 2009년에는 수험과목이 정보체계론 등 42개나 됐다. 또 2004년 외무고시를 시작으로 2005년에는 행정고시에도 문제해결능력 등을 평가하는 ‘공직적격성평가(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가 1차 시험에 도입됐다.


공무원시험제도, 1961년에 골격


행정안전부의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 발표 이후 국민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대체로 개선방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우리나라 여건상 채용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제도운용에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취지에는 공감, 제도 부작용 우려


정부과천청사 출근 중인 공무원.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네티즌 ‘해피맨’은 “상류사회 자식을 특채형식으로 고위공직에 진출시키겠다는 것이다. 말이 민간전문가 특채이지 권력의 대물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행정고시를 8년째 준비 중인 K씨는 “석·박사나 외국회사 경험자한테나 유리한 것 아니냐”며 “현행 고시는 돈 있다고 될 수 있는 시험이 아닌데 개방형 임용을 늘리면 돈 있는 사람의 자녀만 유리해 질 것이다”고 반발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논평을 내고 “공직에 진출하려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데도 선진화방안은 우리사회의 공정한 경쟁을 깨뜨리고, 출신성분이냐 정치성향에 따라 고위직을 등용하려는 ‘현대판 음서제도’이다”며 비판했다. 논평은 이어 “개방형 임용제도는 수천만 원의 돈이 소요되는 외국유학과 자격증을 취득한 자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이번 선진화방안에 앞서 시행된 로스쿨은 시행 2년째인데도 로스쿨 졸업생 판·검사 임용절차와 방식, 변호사시험의 난이도 등을 정하지 못해 혼돈상태이다. 또 로스쿨의 1년 평균 학비가 1600만원~2000만원이 들고, 졸업 때까지는 학비와 생활비 등을 포함해 1억 이상 소요되는 탓에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공직 내부에서는 고시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서울 한 자치구 K사무관은 “과거 국민들의 학력수준이 낮았을 때는 국가발전 주도층인 공무원, 특히 고위공무원 채용을 위한 고시제도가 필수적이었지만 국민 학력수준이 높아진 지금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치구 6급 공무원은 “특권적인 행정고시는 없애야한다”고 잘라 말했다. 중앙부처 3급 공무원인 M씨 역시 “현 상황에서 행정고시 합격자나 7·9급 합격자는 실력에 큰 차이가 없다. 단지 누가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고 말했다.

정작 선진화방안을 마련한 행정안전부는 방침을 정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다. 행정안전부는 채용공정성 확보방안 등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세부추진일정 등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연말까지 법령개정작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4개월 만에 의견충돌이 심한 이번 선진화방안을 완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2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질문에 효과적으로 답변하지 못하는 등 준비부족을 드러냈고, 이는 결국 여당인 한나라당은 16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당정협의도 거치지 않고 행정고시 축소방안을 발표했다는 비판에 노출됐다.
方鏞植 기자 / argus@sijung.co.kr


외국의 고위공무원 채용제도

日 우리와 유사 ‘1종 시험’…제도개편 모색
佛 “ENA 문호 넓히고 특혜 줄이자” 논의

美 성적 25% 대학원생 2년간 인턴 후 임용
英 B학점 이상 대학생 시험 거쳐 선발

우리나라와 같이 엘리트 공무원 선발을 위한 시험을 치르는 대표적인 외국은 일본이다. 프랑스는 일본과 유사하지만 국립행정학교(ENA; 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통해 고위관료를 선발한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은 학교교육과 연계해 선발하며 필기시험보다는 적성검사·역량면접 등을 중시한다.

일본은 우리나라 ‘고시’와 유사한 형태인 1종 시험이 있다. 일본의 공무원시험은 난이도를 기준으로 할 때 대학졸업, 단기대학(우리나라 2년제 해당)졸업, 고교졸업 등으로 분류되며 보통 1종, 2종, 3종으로 불린다. 국가공무원은 시험 정도에 따라 업무내용이 정해지는데 1종은 본청의 간부후보생(엘리트코스), 2종은 특정분야 전문 직원, 3종은 보조적인 서무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1종·2종·3종 시험 대신 종합직·일반직·전문직 등 직종별 시험으로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또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사람 등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 졸업자 시험, 우리나라 5급 이상 직위채용을 목적으로 하는 중도채용시험도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고위직 관료양성학교인 ENA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개혁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졸업등급제를 폐지하고, 집안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ENA특별전형 확대 등 ‘ENA의 문호를 넓히고, 특혜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의지를 피력했다.

1945년 설립된 ENA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리오넬 죠스팽 전 총리 등 프랑스의 유력 정치인을 배출했다. 대학이상 졸업자나 재직공무원 등이 입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졸업평가 결과 1등부터 10등까지는 순위대로 회계감사원, 재정감독원, 국가참사원 등으로 진출하는 등 ENA 중심의 엘리트 순환경로가 확립돼 있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미국은 매년 200명 이상의 대학원생을 선발해 2년간 연방정부에서 인턴근무 후 정규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 프로그램(PMF; Presidential Management Fellowship Program)'을 운영한다. 1977년부터 도입된 이 방식은 학교별 성적 상위 25% 이내를 추천받은 뒤 서류심사·면접·논술 등으로 대상자를 선발한다. 또 1년간의 인턴십 과정을 거치는 ‘7급 견습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고위공무원 선발방식은 미국과 유사하다. 주로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지원하는 ‘속전임용제(Graduate Fast Stream)’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대학졸업학점이 우리나라의 B학점에 해당하는 Second Class Honors Degree 이상이거나 여기에 준하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시 필기시험인 PSAT와 비슷한 언어·수리·추론능력시험과 역량평가를 거쳐 선발한다.

한편 시험관리 전문기관을 통해 공무원 선발을 맡기는 국가도 있다. 캐나다는 인사위원회 하부조직인 인사심리센터(PPC; Personnel Psychology Center)에서 공무원 시험의 평가기법 개발 및 연구, 각 부처 인사담당자 컨설팅 등 공무원 시험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영국은 내각 사무처 산하의 공무원선발위원회(CSSB; Civil Service Selection Board)의 상근 심리학자가 역량평가 등을 연구하고 평가도구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평가한다. 대만은 인사 관장 기관인 고시원 산하 고시선발부에서 공무원시험 등 채용업무를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