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씨 뿌리는 마음으로
가을, 씨 뿌리는 마음으로
  • 시정일보
  • 승인 2004.10.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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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 남 성동구의회 의장


가을이다.
들녘은 진하든지, 연하든지 노란 옷을 입었다. 갓난 아이 손톱 만하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어른 손바닥만큼 자라 이제는 저마다 색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옛 시인은 ‘만산홍어이월화(萬山紅於二月花)’로 가을을 표현했다. 눈 속 붉게 핀 동백보다 더 선연(鮮姸)하게 가을을 노래했다.
가을은 그러나 바쁘다. 결승점을 앞둔 스프린터 같다. 100미터를 향해 뛰어온 그들은 이미 심장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가슴 속에는 한 방울의 산소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 둘 수는 없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달려야 한다.


아쉬움 남는 지방자치법 개정


정부가 지방의회 활성화를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한다고 한다.
내용인즉 지방의회 회기를 정례회는 연 2회를 합해 광역의회는 40일 이내, 기초의회는 35일 이내로 하고 임시회는 15일 이내 하도록 한 현행법 규정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대신 광역의회는 120일 안에서, 기초의회는 80일 안에서 지방의회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회기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올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2005년 <지방자치법 시행령> 개정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조례개정으로 확정된다.
참 다행한 일이다. 또 늦었으되 환영할 일이다.
지방의회 회기를 법으로 ‘올무’ 지워놓고 지방자치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사각(四角)의 틀에서 원형의 주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방의원들은 그동안 회기일수 제한으로 상정된 안건의 중요도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의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안건의 깊이 있는 심의가 불가능했다. 이는 결국 지방의회 발전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조례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상실, 그 폐해가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원인이 됐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이 기회에 지방의회 회기일수 제한규정을 아예 철폐하면 안 되는지 묻고 싶다. 지역특성에 맞도록 의회를 열고, 진행하는 게 지방자치 이념에 부합한다는 생각은 나를 포함한 지방의원과 정부 관계자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물론 회기제한규정을 없앨 경우 예산부담이 현재보다 더 많아지는 게 필연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지방의원 유급제가 시행됐을 때를 감안하면 회기제한규정 철폐가 더 생산적이다.
이와 관련, 우리 서울시 자치구의회의장회는 △기초의회 연 회기일수를 현재 80일에서 100일로 늘이고 △기초의원의 의정활동 지원을 위한 수당 등을 현실화하며 △의회사무국 인사권 독립을 건의한 바 있다. 정부는 우리의 건의를 단순히 ‘직역이기주의(職域利己主義)’가 아닌 지방자치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판단하길 요청한다.
영국의 국회의사당(Parliament of Hall) 옆 빅벤(Big Ben)은 1895년 이래 하루도 거름 없이 전국에 시보를 알려주고 있다.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빅벤의 벨소리를 들으면서 영국 사람들은 영국을 자랑스러워한다. 또 그들은 빅벤 꼭대기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안심한다고 한다. 바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고, 보장하는 ‘의회가 문을 열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출범한 지 14년째인 우리 지방의회도 지역주민들에게 이런 신뢰를 안겨주고 싶다.



책임은 막중하고 길은 멀어

지방의원 생활도 2년이 지났다.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자로, 지역사회 발전에 작지만 도움이 되겠다는 각오로 그 첫 걸음을 내딛은 지가 불과 어제 같은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별로 이루어 놓은 게 없다는 자책이 든다. 그렇지만 자책만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가을 한 가운데 있지 않은가. 조금 있으면 눈 내리고, 찬 바람 부는 겨울이다. 자리를 털고 뛰어야겠다.
더욱이 2004년 7월에는 성동구의회 의장이 됐다. 인격이, 자질이, 그리고 능력이 많은 분들이 많은데도 성동구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집행부를 견제하고, 주민복리를 위해 촌음(寸陰)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의원들의 화합과 협조를 이끌어 성동구의회를 ‘생산적이고 연구하는 모범적인 의회’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시인 이육사(李陸史)는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고 했다.
숨이 턱에 차게 바쁜 가을. 나는 오늘 ‘책임은 막중하고 길은 머니, 죽어야 그만 둔다(任重而道遠, 死而後已)’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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