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수동맹
치수동맹
  • 문명혜
  • 승인 2012.06.07 13:52
  • 댓글 0

 

[시정일보 문명혜 기자] 조선후기 상공업 진흥을 통한 국가발전을 꿈꿨던 북학파의 중심인물인 연암 박지원은 43세때 6개월에 걸쳐 중국을 다녀온 후 열하일기를 출시해 당대의 문장가로 우뚝섰다.

 

연암은 입신양명엔 뜻이 없었는지 50이 다 되도록 벼슬길을 멀리하더니 55세 때 지금의 경남 함양과 접한 안의현감에 부임하고 뒤늦게 목민관으로서 자질을 유감없이 뽐냈다.

관창의 곡식을 축낸 관리들의 비리를 적발해 지혜롭게 곳간을 채워넣고, 유실된 읍성축조를 위해 고된 부역을 져야하는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풍화에 내구성이 강한 벽돌 축성법을 도입한 것 등을 보면 진즉에 출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특히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계곡이 많은 지역특성을 활용해 크고 작은 저수지를 만들고 물레방아를 축조해 임기 5년동안 부임지의 농업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나 지역민들의 가슴에 연암은 오랫동안 선정관으로 자리잡는데, 이는 ‘치수’야 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임을 증명하는 무수한 예중 하나다.

연암 사후 200여년이 흐른 2012년 5월31일 오후 3시 강북지역 45km를 돌아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중랑천 유역 8개 자치단체 ‘목민관’들이 석계역 인근 성북구간 중랑천 둔치에 모여들었다.

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오염이 심화돼 시민들과 멀어졌던 중랑천은 각고의 노력 끝에 잉어떼가 돌아오는 등 생태성이 회복됐지만 ‘이용후생’과 진정한 의미의 생태계 복원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공감대가 그들을 뭉치게 만든 것이다.

단체장들은 우선 ‘낚시금지 선포식’이라는 크지 않은 행사를 준비했는데 350만명의 시민들에게 고루 퍼져야 할 자연의 이익이 소수 강태공에게 집중돼서는 안되고 어획은 생태계 복원에 역행한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고도화된 도시문명이 가져다 준 달갑지 않은 그늘을 걷어내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고 향후 펼쳐질 순차적 액션플랜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성 싶다.

성북, 광진, 노원, 도봉, 동대문, 성동, 중랑구 등 서울시 7개 자치구와 의정부시 단체장은 중랑천의 생명력을 굳건히 하겠다는 ‘치수동맹’을 맺고 21세기 선정관을 꿈꾸고 있다. 200여년 전 연암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