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효율 극대화? 장기적 관점 구의회 폐지는 ‘비효율적’
행정효율 극대화? 장기적 관점 구의회 폐지는 ‘비효율적’
  • 임지원
  • 승인 2012.08.0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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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의회 폐지-기초자치단체 통·폐합의 문제점

민선5기 후반기 ‘뜨거운 감자’ - 지방행정체제 개편
자치구의회 폐지-기초자치단체 통·폐합의 문제점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정치의 자율성을 버렸다.

” 대통령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지방행정체제 개편 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안)에 대한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상철 사무처장의 일갈이다. 시민단체 희망행정네트워크는 개편안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살하고자 하는 반민주적인 처사이다’고 비판의 톤을 높였다.
이렇게 기본계획안에 대한 논란이 심한 것은 36개 시·군·구의 16개 지역통합과 특별시·광역시 기초의회 폐지 탓이다. 자치구의회 폐지는 훨씬 ‘뜨거운 감자’다. 국민은 폐지를 희망하지만 정치권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존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안은 현재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돼 있는 상태. 국회는 기본계획안에 대해 토의를 벌인 후 본회의 투표를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시행여부를 결정한다.
본지는 찬반이 분명하게 갈리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안과 관련, 4회에 걸쳐 다양한 의견과 그동안의 통합사례의 효과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100년을 바라볼 수 있는’ 지방행정체제의 바람직한 개편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편집자>


<사례1>의장직 쟁탈전 심화 검은 뒷거래

‘풀뿌리 민주주의’의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5대 A자치구의회에서 의장직 쟁탈을 위해 검은 뒷거래가 밝혀진 탓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도 비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권에, 이권에 눈이 멀어 풀뿌리 지방자치와는 멀어져가는 지방의회의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다.


<사례2>“구의회 폐지 찬성” 자성의 목소리도

“주민을 위해서만 일하고 싶다”는 기초지방의회 의원의 당연한 이 한마디가 선거철만 되면 더욱 더 지켜지기 어렵다. 구의원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는 당사자인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구의원들까지 지치게 만든다. 지난 4월 총선이 지나간 기초지방의회 중 초토화된 곳이 적지 않다. 지지했던 후보에 대한 충성심인지, 의리 때문이지 6대 후반기 일정이 시작된 지 1달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원구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방의회도 있다.


<사례3> 국회의원 ‘공천눈치’ 원구성도 못해

구의원의 입에서 직접 구의회 폐지를 찬성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전광역시 서구의회 구우회 의원이 ‘광역시 자치구의회 폐지를 찬성하며’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것. 구우회 의원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주민과 상생하는 지방자치시대를 열기 위해 중선구제와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현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광역시 자치구의회를 폐지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 기본계획안에 동의하며, 찬성한다”고 의지를 굳건히 했다.


곳곳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 토론회, 오히려 자치구의회는 ‘잠잠’
배보다 배꼽이 큰 구의회 유지비… ‘지방의회 무용론’ 주홍글씨
차성수 금천구청장 “구청장으로서 활동하며 구의회 필요성 실감”

자치구 예산 중 고정적인 비용, 예를 들면 인건비, 국ㆍ시비와 매칭되는 복지비 등을 제외하면 구의회에서 실질적으로 심의, 감사할 수 있는 한해 예산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이에 비해 구의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데서 ‘지방의회 무용론’이 자주, 그리고 매번 강하게 언급되고 있다. 위 사례들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개편추진위원회가 지난 6월13일 전국 35개 시ㆍ군ㆍ구를 16개로 통합하고, 특별시ㆍ광역시 자치구ㆍ군 의회 폐지를 골자로 발표한 ‘지방행정체제개편 기본계획안’에 논란이 생기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자치구의회는 의외로 잠잠하다. 각 자치구의회별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의 노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구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어떠한 의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희망행정네트워크, 균형발전지방분권지역연대 등 사회단체 및 학계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균형발전지방분권지역연대 주관으로 지난 7월11일 서울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토론회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토론회는 ‘지방행정체제개편의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을 주제로 안성호 대전대 교수와 이상선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공동대표의 발표가 이어졌다.

안성호 교수는 지방행정체제개편과 관련, “개편안대로 입법되는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 228개 중 94개가 일거에 파괴된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1961년 군사정부에 의한 지방자치 전면 중단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지방의원 1명은 주민 1만4000명을 대표하고 있다. 개편안이 추진되면 2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지방의원 1명당 1000명의 주민을 대표하고 있는 선진국과는 상반된다. 51만5000명의 지방의원이 활동하는 프랑스는 한명의 지방의원이 고작 118명의 주민을 대표한다. 안성호 교수는 “대의민주주의가 정립되지 않으면 주민의 참여는 더욱 힘들다. 기초의회를 없애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반문하며, “대의 구조시스템에서 의회를 보다 세분화하고 전문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안성호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간간히 기초정부를 합병하면서 다중심 거버넌스 체제를 유지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정치권과 정부는 획일성을 심화시키는 단일중심주의 지방자치체제 개편에 집착해왔다”면서 “대도시 자치구ㆍ군 폐지안을 채택한 위원회의 결정은 반 지성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치구의회 폐지와 관련해서는 패널 중 차성수 금천구청장의 의견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구청장이 아니었으면 지방의회 폐지에 찬성했을 것이다. 구청장으로서 구의회를 경험하면서 의회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토론을 시작한 차성수 구청장.

차성수 구청장은 “정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안은 민주주의적 비효율성, 관료주의의 전문성에 기초한 관료주의의 효율성을 선택한 것”이라면서 관료제의 폐해가 가져오는 문제점으로 규모의 경제를 빙자한 획일성을 지적했다. 획일성이 지배하면 어떠한 창조적인 것도 나올 수 없다. 구의회 도움 없이 선출직 구청장 혼자서 1000여명의 직원들과 300여명의 산하기관 직원들로 구성된 조직을 이끌며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구민들이 원하는 조직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높은 벽도 관료제의 폐해다. 차 구청장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까지의 칸막이가 너무나도 확실하다. 칸막이를 넘어서려면 수요자로부터의 만족도, 체감도, 효율성에 입각한 의회 활동이 필요하다. 수요자, 즉 구민에 기초한 효율성을 생각하면 구의회 폐지는 비효율적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차 구청장은 “관료주의도 비용을 갉아 먹는다. 중장기적인 효율성을 찾는다면 주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구의회 폐지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밖에도 안재홍 종로구의회 의원은 “우리나라 대도시에 부족한 것은 행정의 효율성이 아니라 민주성이다. 개편 추진위원회의 주장은 바로 이 민주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박재율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공동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자치구ㆍ군을 보다 더 축소해 대동제 형태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동네자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한 건 했다는 정치인과 관료의 실적을 위해 시ㆍ군 통합과 자치구 폐지가 강행되고 있다. 지방자치와 주민의 복리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면서 현 상황을 비판했다. 특히 주민 서비스 및 복지 불균형을 이유로 자치구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행정구로 전환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광역시와 특별시에서 조정, 해소돼야 한다”고 반론했으며, 생활권과 행정권 괴리로 인한 불편 해소 또한 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으로도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개편안이 통과되기는 어렵겠지만 연기가 나면 언젠가 불이 나게 마련. 기초자치의회를 살리기 위한 관심이 아쉽다.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지방의회 의원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林志元 기자 / sijung1988@naver.com

“작은 지방정부가 효율적이다”
기초단체 통폐합→시민 참여기회 축소
통합 거대집단, 외부위협 대응력 떨어져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그의 저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경제에서 필요한 것만큼 사회에서도 필요하고, 기업에서 필요한 만큼 공공서비스 기관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가적 정부’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공공부문에 경쟁원리를 도입함으로써 행정비용의 낭비와 비능률,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방지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행정의 주요 고객인 국민들의 공공복지를 위해 최대한의 재정을 확보해야 하고, 주어진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에서 통용되는 이론이 그대로 행정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기업에서도 ‘규모의 경제화’는 무너지고 있는 실정. 대량생산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고객의 욕구가 그만큼 다양해졌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여성 정치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노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자치구ㆍ군 폐지나 시ㆍ군 합병을 통한 지방자치단체의 규모 확대가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통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대도시개혁론자들이 주장해온 ‘지방정부 합병의 효율성’ 논거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간 통합은 이들 간의 경쟁을 없애고, 주민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조차 뺏는다. 주민들의 발언 기회가 줄어들면, 이들의 불만과 요구가 통제돼 오히려 ‘시민참여의 효율성’은 낮아지게 된다. 시민들의 참여가 줄어든다는 것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 모색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된 거대 자치단체는 외부 위협에 대한 대응력에도 경쟁력이 없다. 동일지역, 상이한 수준에서 조직된 복수의 작은 정부에서 일어나는 정책오류는 그 지역에서만의 실패로, 시행착오를 통해 다른 정부에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 엘리노 오스트롬이 “작은 지방정부가 효율적이다”고 강조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