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예산위원 권한 없어 ‘제안 수렴’ 요식행위 그쳐
주민참여예산위원 권한 없어 ‘제안 수렴’ 요식행위 그쳐
  • 백인숙
  • 승인 2012.09.0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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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주민참여예산제 시행 1년 점검

 

도봉구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이 ‘참여예산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다. 도봉구는 타 구보다 앞서 조례를 제정, 올해로 주민참여예산 2년차를 맞고 있다.

 

 

UN “세계에서 가정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제도” 인정
2003년 광주 북구 최초 시행, 지난해 9월 전국 전파

민선5기 단체장 공약, 자치구들 제도시행에 적극적
서울시, 주민들이 원하는 ‘생활예산’ 작은 성공 결실


[시정일보]<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난해 9월부터 의무화된 ‘주민참여예산제’. 말 그대로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시민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예산에 대한 시민통제를 통해 지자체의 책임을 고취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대한민국 최초로 광주시 북구에서 조례가 제정된 이후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대돼 많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많은 지자체 장의 공약사항으로 제시되며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기도 했다. 또 UN이나 월드뱅크 등에서는 이 제도를 예산 및 행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의 하나라고 극찬하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는 일반화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주민의견을 반영하는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에 본지는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목표로 그동안 시행된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해 짚어보고 ‘의미 있고 바람직한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한 곳은 지난 2003년 조례를 제정한 광주 북구가 그 시초이다. 이어 2004년 6월10일 울산광역시 동구가 조례를 제정 시행했고, 2005년 6월7일 울산 북구가 조례를 제정, 동구와 유사한 제도로 시행 운영하고 있다. 또 대전시 대덕구는 같은 해인 2005년 12월9일 조례를 제정,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고, 최근 정부에서 <지방재정법> 개정을 실시하며 2011년 9월부터 전국에 의무화하고 있다.

◆ 무늬만 주민참여예산제?
행정안전부에 의하면 지난해 9월 전면 시행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현재까지 전국 242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서 조례 제·개정을 통해 도입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실제 지자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지자체는 아직 소수에 불과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또 위원회 구성 방식도 지자체들이 자체 선정한 기준에 따라 구성·운영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현재 적지 않은 지자체가 위원회가 일부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다 참여하는 주민에 대한 적절한 권한도 없는 형편으로 실제 각 지자체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예산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광주시 북구조차 2004년~2009년까지 6년간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예산편성에 반영한 평균예산액 규모가 전체의 1.15% 수준에 불과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이호 소장은 “실제 주민들이 지자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했다고 평가할 만한 곳은 3~4곳에 불과하다”며 “조례에서 정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예산 제안을 수렴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행안부가 주민참여예산제 도입을 위해 배포한 표준조례 모델안도 엉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데 1안은 ‘위원회 등을 둘 수 있다’는 권고 수준, 2·3안은 ‘둔다’는 의무 사항으로 이뤄져 지자체가 이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사실상 아무런 제약이 없는 1안을 선택,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생색만 내고 있는데, 조례에 대한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행안부도 조만간 조례개정 등 주민참여예산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각 지자체, 주민참여예산제 시행 성과
서울 25개 자치구도 주민참여예산제 전면 시행과 함께 그동안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구청장 공약사항으로 밝힌 곳은 종로, 동대문, 성북, 강북, 도봉, 노원, 은평, 서대문, 마포, 강서, 구로, 금천, 관악, 강동구 등 총 14곳으로, 공약사항답게 타구에 비해 조례제정과 위원공개 모집, 예산학교 운영 등 차분히 준비된 제정조례에 근거해 나름 주민참여에 의한 예산편성을 위한 의지가 확인됐다. 또 도봉, 은평, 서대문구의 지역회의의 경우, 인원에 상한선을 두지 않고 가능한 많은 주민의 참여를 보장한 점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성북구(구청장 김영배)는 ‘우리가 디자인하는 성북구 살림살이’란 제목의 주민참여예산 길라잡이를 발간해 눈에 뛴다. 또 취임 전부터 참여행정을 강조해오며 타구보다 앞서 주민참여기본조례를 제정한 도봉구(구청장 이동진)는 2011년 6월 주민참여예산조례를 제정하고 한달 뒤 위원공개 모집에 이어 공무원 대상 교육 등 금년까지 2년차를 맞으며 타구의 모범사례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편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한마당에서 12개의 사업이 선정돼 2위를 차지한 강북구(구청장 박겸수)는 주민참여를 통해 예산낭비를 막는다는 신념하에 예산낭비 신고센터를 운영, 예산절감과 수입증대에 기여한 구민에게 최고 2000만원까지의 성과금을 지급하며 제도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예산(일반액 2480억원)의 1%인 24억원을 주민 손에 맡기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대문구(구청장 문석진)와 구청장 공약사항답게 주민의 참여를 일찍부터 추진한 노원구(구청장 김성환), 금천구(구청장 차성수) 역시 제도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 시민참여로 작은 성공(Small Wins) 거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가을이 시작된 지난 1일 서울 중구 덕수궁길과 시청 후생동 강당에서 ‘참여예산한마당’과 ‘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참여예산한마당에는 서울의 25개 자치구가 사업설명 부스를 설치하고 특색있는 사업설명 자료를 제작, 참여예산위원을 상대로 열띤 설명전을 펼쳤는데 서울시는 이날 내년 반영될 500억원 규모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총 132개 사업을 최종 선정했다.

사업 분야별로는 35개 사업 132억원이 선정된 환경공원분야가 가장 많았고 건설교통분야가 26개사업인 121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지역별로는 13개의 사업이 선정된 관악구(17억8000만원)와 12개의 사업이 선정된 강북구(31억1500만원)의 사업건수가 가장 많이 지원을 받게 됐고, 도봉구 ‘창동문화체육센터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사업비 9500만원)’을 제안한 이순애 씨가 최다득표(108표) 사업으로 선정됐다. 반면 강남, 서초, 양천구 세 곳은 제안사업이 하나도 선정되지 못해 위 사례와 대조를 이뤘다.

서울시는 5월24일~6월8일까지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참여예산위원회 위원 공모를 실시, 6월14일 공개추첨을 통해 자치구별로 6인을 선정했다. 또 시는 각 구에서 선정된 예산위원을 상대로 예산학교를 운영했고 지난 7월14일엔 위촉식 및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시민과 자치구를 대상으로 7월20일까지 제안사업을 신청 받았는데 그렇게 모인 시민제안사업이 402개(1989억원)였고 7월25일 2차 분과위원회를 열고 모든 주민참여예산위원은 자치구별 사전심사소위원회와 분과위원회에 속해서 자치구별, 분과별 심사에 참여했다. 그렇게 심사를 거쳐 총회에 상정된 사업은 240개(876억원)였고 한마당에서 위원들은 240개 사업 가운데 1인당 72개 사업을 각자 선정했다.

특히 1일 오후 6시부터 열린 총회에서 위원들이 선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득표순으로 132개 사업(499억 4200만원)을 2013년도 참여예산사업으로 최종 추인했는데 선정된 132개 사업 499억원은 내년 서울시 예산안에 반영돼 시의회의 심의 확정을 거쳐 2013년 시행하게 된다.

한편 일부 우려와 달리 나눠먹기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도로나 대형 건축물 등 이른바 ‘토건 예산’이 아니라 생활·복지와 직결되는 ‘생활 예산’이라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듯 CCTV 설치 제안사업이 9건(24억 9200만원)이나 된 것도 주민들의 요구가 예산에 적극 반영된 사례였다.
白仁淑 기자 /
beakihnsuk@sijung.co.kr


■ 주민참여예산제 도입배경과 활성화 방안

지방자치단체장의 추진 의지 중요
예산 편성부터 결산까지 투명공개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참여예산제도의 도입배경을 보면 첫째, 지방자치단체장의 강력한 추진의지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선거공약처럼 소속정당의 선거공약으로 약속하는 경우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선출된 단체장들의 경우 개인 선거공약으로 참여예산제의 도입을 약속, 이를 이행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제도도입 요구로 시행된 경우이다. 시민단체들은 예산감시운동 연장선상에서 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을 요구했고 지자체가 부활한 1998년부터 시민단체들이 자치단체의 예산감시운동을 해오면서 예산낭비와 선심성 예산 등 잘못된 예산편성 및 집행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고발했다. 또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셋째, 참여정부의 제도도입 권고로 시행된 경우이다. 위의 두 가지 요소와 함께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의제로 선정하고 ‘지방분권추진 로드맵’과 ‘재정 세제개혁 로드맵’에 이 제도의 도입을 계획, 2005년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면서 참여예산제도의 시행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주민참여예산제의 도입을 권고했다.
한편 많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선 예선편성, 심의 의결, 집행, 결산 등 모든 예산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또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민참여의 효과적인 조직화와 주민참여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산결정 과정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를 설계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이 예산편성과정에서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의 필요성에 긍정적인 인식변화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전개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하며 특히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역기능으로써 공무원들의 자율성 약화, 집단이기주의 조장, 예산분배의 공정성과 형평성 훼손, 지방의외와 집행부간 마찰, 지역주민과 집행부와의 충돌 발생 가능한 문제점에 대한 사전통제와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비돼야 할 것을 권고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성공요인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이정훈 안동과학대 교수는 “무엇보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운영절차와 기준들을 표준화하고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제도적 상황적 맥락에 적합한 최적모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주민참여라는 상징성만을 강조하는 형식적인 예산행정개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제도와 운영 모형에 대한 계속적인 분석과 수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예산관계센터 관계자는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단체장의 의지가 관건으로 단체장의 권한인 예산편성권을 주민들과 협의해 공유하겠다는 수평적 분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또 주민들도 예산이 우리생활과 밀접하게 직결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예산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