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끌고 구청은 미는 ‘손수레형 거버넌스’ 목표
주민이 끌고 구청은 미는 ‘손수레형 거버넌스’ 목표
  • 방용식
  • 승인 2012.09.20 14:57
  • 댓글 0

인 터 뷰 / 마을공동체로 ‘가장 행복한 종로’ 실현 김영종 종로구청장

 



성과에 집착 말고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 하자고 다짐
도시농업에 애착 많아 … “종로구라서 도시텃밭 가능”

 

[시정일보]“마을은 ‘(마시는)물이 하나(同)’인 모임이다. 여기서는 우리를,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울력과 두레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마을을 잊었고, 공동체는 붕괴됐다.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게 바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다.”

 

김영종 구청장. 그는 마을공동체를 향한 선(線)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구청장이 되기 전부터 이미 마을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世田谷)구를 방문하며 마을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굳혔다.

그는 민선5기 종로구청장으로 당선되면서 도시농업에 힘을 쏟았다. 쓰레기 상습투기장을 도시텃밭으로 바꿨다. 29곳이나 된다. 도시텃밭은 지역주민들의 얼굴빛과 목소리를 다르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OOOO번 차 빼요”라는 말 대신 “△△엄마, 배추가 잘 자라네요!”라는 인사가 동네에 가득하다.

김영종 구청장은 “종로만이 가능한 일이다”면서 “일하는 맛 난다. 재미있다. 구청장 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한 태도로 성과를 내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작은 일을 이루는 데 조급해 하지 않았다(不急於小成)’는 중국 송나라 주희가 떠올랐다.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사람 중심, 명품도시 종로’를 이뤄나가는 김영종 구청장을 만났다. 그는 요즘 부인에게 “신났네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다소 추상적인데.
“마을은 일상에서 필요한 일과 활동을 공유하고, 공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구체적으로는 주민이 서로 알고 대화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그리고 마을공동체는 주민들이 각자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마을에 관한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자치공동체’이다. 즉 골목이 놀이터이고, 옆집 아줌마가 이모가 되는, 그러면서 나눔과 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이다.”

- 사업을 왜 추진하게 됐는지.
“급격한 도시화와 압축 성장으로 우리 사회는 사람의 가치와 신뢰의 관계망을 잃었다. 잃어버린 가치와 신뢰를 회복해야 건강한 도시, 행복한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가 될 수 있다. 최근 이웃과의 관계, 내가 사는 마을에 고민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에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종로구가 목표로 하는 ‘사람 중심의 도시’와도 일맥상통하며, 주민자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김 구청장은 ‘세 명이 길을 가면 반드시 한 명의 스승이 있다’는 논어(論語) ‘술이’편의 글을 비틀어 적은 점술집의 간판 내용에 안타까워했다. 간판에는 ‘세 명이 가면 두 명이 도둑’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했다.

- 행정기관이 기획한 사업은 대부분 ‘관 주도, 민 추종’의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늦더라도 주민들이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앞장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길은 ‘일꾼양성’이다. 우리는 마을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 정상화부터 힘썼다. 마을의 소소한 일부터,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이 주도하고 구청은 지원할 수 있도록 자치행정과에 ‘마을공동체지원팀’을 꾸렸고, 조례를 제정하고, 마을공동체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학습하면서 호흡을 같이하고, 마을공동체 사례연구와 활동사항을 다양하게 홍보하고 있다. 앞에서 주민이 끌어가고, 뒤에서 구청이 밀어주는 ‘손수레형 거버넌스’ 실현이 마을공동체 사업의 목표이다.”

- 뭔가 이루겠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내는 것이 마을공동체 사업 또는 구정운영의 원칙인지.
“일을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종로구에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표어가 있는데,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이다.
서둘러서, 그리고 제대로 하지 못한 사업으로 수송동계곡 복원이 대표적이다. 수송동계곡은 참 슬픈 일이다. 처음에 깊게 생각했으면 계곡을 훼손해 아파트를 짓지도 않았고, 아파트를 짓더라도 제대로 지었더라면 40년 만에 철거하지도 않았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천천히, 제대로’ 해야 한다.”

- 마을공동체 사업 중 종로구만의 특화사업은.
“도시농업은 종로구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종로구에는 현재 29개의 도시텃밭이 운영되고 있다. 도시텃밭은 녹색도시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해서도 좋은 커뮤니티이다. 작물을 재배하면서 이웃과 얘기하는 것은 마을공동체 사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생각한다.
청운효자동은 수년간 ‘효자동 프로젝트’를 주민들 힘으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교남동은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마중물복지회를 운영하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가까운 창신동 봉제마을은 ‘어린이봉제교실’과 ‘춤추는 재봉틀’, 통인시장에서는 ‘도시락카페’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고 있다.”

- 마을공동체 사업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은.
“주민들이 함께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성과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추진되면서 마을회의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마을일꾼 양성을 위한 마을아카데미에 신청자가 넘친다. 또 서로 얼굴을 모르고 지냈던 이웃들이 인사를 나누는 등 사람들의 관계가 따뜻해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공동체 사업은 기존의 행정패러다임과 전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2년의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행정기관 단독으로 진행할 수도 없다. 사람들의 관계회복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금년 한해는 마을공동체 토대 마련의 해로, 2013년은 정착의 해로, 2014년은 확산의 해로 설정했다.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쉽고 작은 것부터 출발하겠다. 디지털(Digital)이 아닌 아날로그(Analogue)적 방법으로 접근하겠다.”

- 지역주민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동네’로 지리(地理), 생리(生利), 산수(山水)와 함께 ‘인심(人心)’을 꼽았다. 토박이가 많은 우리 종로야말로 인심이 넘치는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서울대·행정안전부 등이 종로구를 ‘사회의 질’ 전국 1위로 꼽았고, 얼마 전에는 이화동이 노인들이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선정됐다.

종로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고, 수도 서울의 600년 역사를 간직하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좋은 동네, 아름다운 동네는 주민의 노력이 더해져야 값지다. 진정한 명품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주민들이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
方鏞植 기자 / bays1@sijung.co.kr

■■■ 종로구 사람들이 가꾸는 마을공동체는…

 

 

 함께 모여 생각하며, 나누며, 즐긴다
살고 싶은 동네 사람이 행복한 종로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 1887년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지은 책 이름이다.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을 거쳐 이전세대에 비해 획기적인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고,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지식의 ‘신념’이 넘쳤으며, 인간이성은 한없이 합리적이라고 느꼈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으로 인간은 원자화됐고, 물신(物神)풍조가 높아졌다. 10년 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했다.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 1887년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지은 책 이름이다.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을 거쳐 이전세대에 비해 획기적인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고,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지식의 ‘신념’이 넘쳤으며, 인간이성은 한없이 합리적이라고 느꼈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으로 인간은 원자화됐고, 물신(物神)풍조가 높아졌다. 10년 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했다.

2012년 서울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사람 중심’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민주통합당(당시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서울 구청장으로 대거 당선되면서,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진작부터 예견됐다. 2011년 10월에는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씨가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선출되면서 마을공동체는 서울의 ‘화두’가 됐다. ‘진짜 서울’ 종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핵심이 됐다.

종로구 마을공동체 사업은 ‘살고 싶은 동네, 사람이 행복한 종로’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함께 모여(마을카페), 함께 기르고(공동육아), 함께 먹을거리를 찾아보고(마을생협), 함께 일하며(마을기업), 함께 소식을 나누며(마을미디어), 함께 즐긴다(마을축제)는 실천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람중심의 가치를 회복하고, 신뢰의 관계망을 구축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목표연도는 2014년으로, 금년에 공동체 토대를 쌓고 내년에 공동체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구는 이와 관련, 지난 3월28일 마을공동체지원팀을 신설한 데 이어 5월4일에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지원조례는 지역별 마을공동체 행정협의회 설치·운영, 마을공동체 일꾼 발굴·육성, 사업홍보 및 교육을 맡는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설치·운영을 담고 있다. 7월에는 마을공동체 분야 전문가 15명으로 마을공동체위원회가 출범했고, 6월에는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결성돼 지역 풀뿌리단체와 마을활동가·주민·공무원이 ‘살기 좋은 동네, 행복한 종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종로구 마을공동체 사업의 대표적 사례는 ‘창신마을넷’, ‘품애’, ‘북촌한옥마을’이다. 또 마을 곳곳에서는 29개의 도시텃밭이 운영 중이다.

‘창신마을넷’은 창신동 일대 주민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지난해 8월30일 모임이 시작됐고, 10월16일 창신동 보물찾기 첫 행사를 가졌다. 창신마을넷은 보물찾기(3회) 외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봉제패션교육프로그램, 독서교실 및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또 우리 마을 미디어문화교실 ‘3시간의 자유 - 창신동 여인네 이야기’를 지난 6월17일부터 9월9일까지 개최했다.

사직동, 청운효자동, 부암동, 평창동 주민들이 모여 만든 ‘품애’는 효자동프로젝트, 착한잔치프로젝트, 미혼모 자립·자활을 돕는 아기엄마프로젝트, 마을상품프로젝트, 나무재생프로젝트, 문화놀이프로젝트, 사랑방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통인시장 상인들이 모여 만든 ‘도시락카페’는 이색적인 음식문화공간으로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은 서울의 대표 한옥마을의 특성을 살린 마을 가꾸기 사업. 북촌문화포럼은 일본 나라시 마을만들기회와 교류하고, 북촌예술단은 창경궁 관광객을 위한 효도공연을 한다. 미지정 문화유산 보존에 나서는 ‘아름지기’와 한옥체험살이운영자협의회, 북촌전통공방협의회, 도시연대, 삼청미인 등도 그 활동이 돋보인다.

종로구 배공순 자치행정과장은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떠나가는 종로’의 이미지를 벗고 주민정주율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주민과 행정을 연계해 주민들이 자발적이며 주도적으로 마을을 만들어가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