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길, 안전합니까?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길, 안전합니까?
  • 노재혁
  • 승인 2013.04.0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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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장애인 및 교통약자를 위한 도로시설물의 현주소


[시정일보]한 드라마에서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하이힐을 신고도 우아하게 거리를 걷는 모습이 연출됐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점자유도블록이 끊겨 있는 보행로. 주먹구구식으로 무분별하게 설치된 볼라드 등은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장애인들의 보행권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인구에 비하면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도로환경조차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기존에 설치된 도로시설물은 장애인 및 교통약자에게 더 큰 불편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본지는 장애인의 시각에서 이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보행권의 현주소를 되짚어본다.


BF인증제 활성화 위해 ‘인센티브’ 도입 필요
‘들쭉날쭉 볼라드’ 소재ㆍ높이 등 규정 강화
보행-자전거길 사이 구조물 설치, 사고 예방

일명 거리의 지뢰로 불리우는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든 볼라드.

길을 걷다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끊겨 있거나 점자블록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는 BF인증제, 즉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중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Free)’ 인증제 버전2.0에 점자블록 설치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대전시 동구 계족로 및 서구 둔산동 전용도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로부터 BF 예비인증 최우수등급을 받았다.

시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도로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설계에 반영해 BF 예비인증 최우수등급을 획득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특히 휠체어 이용자가 건물의 진출입이 편리하도록 보도높이 조정,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 및 경고용 띠 설치, 장애인 휴게 공간 조성 등 보행자 위주로 계획돼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점자블록은 설계에 들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안전 보행을 위협한다.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바닥에 일자로 설치되는 유도 및 경고용띠는 시각장애인이 흰 지팡이나 발로 눌렀을 때 안내하는 유도블록이라고 느낄 수 없고 장애인들은 유도블록(선형, 점형)을 통해 보행 훈련을 받기 때문에 꼭 설치해야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BF 인증심사 기준에 보도의 중심에 점자블록을 사용해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보행안전구역의 중심에 점자블록을 사용해 유도할 경우 등급 외로 평가하기 때문에 BF 인증을 받으려는 자치단체들은 보행로 설계에 점자블록을 제외하고 있다.
LH공사 BF인증 담당자는 “점자블록이 다른 장애인이나 일반인, 특히 여성분들이 하이힐을 신을 때 많이 미끄러지거나 보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보행로에 점자블록을 설치하면 인증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BF 인증제의 실효성이 의심될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다. 한 휠체어장애인은 BF 최우수등급 예비 인증을 받은 장애인 복지관 2층에서 운영 중인 운동시설을 이용해 보려 하지만 출입문이 여닫이로 돼 있어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또 화재 대피시설도 여닫문이라 유사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
이에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BF 인증제를 각층 장애인이 참여해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제도를 만들어 나가 필요한 것들을 추가 보완해야 하며 점자블록 같은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해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장애인과 어르신 등 약자계층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높아져야 한다”며 “BF 인증제가 인센티브 부여 등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 참여율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척수장애인협회 관계자는 “휠체어장애인이나 다른 비장애인의 편의를 보완해 재질을 돌이 아닌 다른 재질로 점자블록에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를 부르는 잘못된 자전거도로

휠체어장애인들에게는 녹색성장 녹색바람 열풍에 따라 성공적인 정책으로 인정받는 자전거전용도로 또한 반갑지만은 않다. 일부 잘못된 자전거도로 개설로 인해 시각장애인·휠체어장애인 및 교통약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보행로 안쪽에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는 경우 자전거도로가 보행로의 대부분을 차지해 자전거가 아닌 다른 보행자들이 길을 걷는데 좁은 보행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시각장애인 및 휠체어장애인들이 좁은 길이 아닌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게 돼 자전거와 충돌사고의 위험성이 높고 일반보행로와 자전거도로 사이를 구분하는 어떤 장치도 안 돼 있는 경우에는 더 큰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자전거보관대도 문제다. 대부분의 자전거보관대가 잠시 자전거를 보관해 두는 곳이 아닌 폐차 자전거를 버리는 곳이거나 자전거를 보관해두고 오래 방치해 둬 일부 보행로를 막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시각장애인이 길을 걷다 자전거에 걸려 넘어지거나 휠체어장애인들 가는 길이 좁아 못 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보행로와 같이 자전거도로가 설치될 경우 보행로 바깥쪽에 설치하고 보행자와 자전거도로 사이를 구분하는 구조물 설치 등 전반적인 제도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척수장애인협회 관계자는 “휠체어장애인을 위해 자전거도로에 장애인휠체어 전용도로라는 팻말이라도 만들어 주기 원한다”며 “자전거보관대에 있는 못쓰는 자전거는 보행로의 확보를 위해 정리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리의 지뢰밭, 볼라드

규정에 맞게 설치된 볼라드.

요즘 ‘거리의 무릎지뢰’란 이름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볼라드는 선박을 묶는 말뚝에서 어원이 비롯됐으며, 1991년 발생한 여의도광장 차량질주사건 및 크고 작은 차량진입 사건 이후 정부 및 자치단체에서 급속도로 설치한 차량 진입 억제용 말뚝이다. 하지만 이 볼라드는 장애인·비장애인 모두에게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라고 불릴 만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볼라드를 설치하려면 국토해양부 교통안전복지과에 주관하는 교통 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라야 한다. 보행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 밝은 색의 반사 도료 사용해 쉽게 눈에 띄도록 해야 한다. 말뚝의 크기와 설치 간격도 정해져 있으며 볼라드 앞 30cm 앞에는 시각장애인이 충돌 우려가 있는 구조물이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점자블록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를 둘러보면 잘못 설치된 볼라드가 너무 많다. 각 지자체가 규정을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무분별하게 설치해 놓은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설치된 볼라드는 높이 50cm로 낮고 재질도 전체 조사대상의 83.5%가 단단한 화강암이나 쇠로 만들어져 있다. 모양이나 높이 또한 제각각이다.

시설설치 담당자가 국토해양부에서 정해 놓은 규격제품을 시공·설치하면 되는데 이 규정을 무시하고 업체의 말만 믿고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경기도 안산시에서는 김 모 시각장애인이 무분별하게 설치된 볼라드에 넘어져 사고를 당해 사고 책임을 놓고 안산시와 법적 소송을 했지만 패소한 사건이 있었다.

그밖에도 자전거 전용도로에도 볼라드가 설치돼 있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볼라드를 피하지 못하고 볼라드에 부딪히는 사고 역시 종종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가 낮게 설치된 볼라드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도 생기고 있다.

이렇게 서울시내 설치된 볼라드 4만3000여개 가운데 절반인 1만9000여개가 규정에 맞지 않는 볼라드로 교체비용만 60억원에 달하며 2006년 관련법 개정으로 재시공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해 버리고 있다.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각 지자체들은 2006년 개정된 규정대로 △볼라드의 높이 80~100cm, 지름은 10~20cm, 말뚝의 간격 1.5m 안팎으로 기존에 있던 볼라드 재시공 및 신규 볼라드 설치를 해야 한다”며 “말뚝의 소재는 보행자가 혹시나 부딪쳤을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되 속도가 느린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강도도 갖추고 볼라드의 0.3m 앞에는 시각장애인이 충돌할 우려가 있는 구조물이 있음을 미리 알도록 점자블록을 설치해야 하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盧載爀 기자 / sijung1988@naver.com


■■■‘보행친화도시’ 서울시의 비전

도로환경개선에 장애인 참여 의견반영
횡단보도 신호등 ‘녹색시간 연장’ 추진

베트남의 자전거·오토바이·휠체어 전용도로 모습.



서울시가 1월21일 선진국형 보행 도시로의 전환에 기틀이 될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보행 환경 및 관련 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10개 사업을 추진, 현재 16%인 보행수단 분담율을 2020년까지 2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특히 앞으로 보행친화도시 조성의 ‘기본서’로서 보행 관련 모든 시 정책·사업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하게 될 비전에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 관련 내용도 들어있다.

시는 장애물 없는 대중교통 이용 환경 시범 사업을 계속 시행한다. 현재 뚝섬역∼서울 숲 개선사업이 시행 중에 있으며 잠실종합운동장, 서울역, 고속터미널 중 계속 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으로 장애인이 직접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 이동편의 마실 그룹’을 운영한다.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도 확충된다. 시는 내년까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기존 794대에서 826대로 확대 설치하고, 에스컬레이터도 1779대에서 1852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적지 음성인식 안내서비스’가 지원되는 시내버스 정류소도 400개소로 확대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신호기 기능 개선과 함께 매년 1000대씩 추가 설치, 불합리한 볼라드 교체 및 철거, 점자블록 확대 설치 등 장애인 보행편의 증진을 위한 시설물 개선이 추진된다.

올해 중으로 보행 및 교통안전시설물이 교통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버스정류소와 지하철역사 시설, 도로 및 보행시설(보도·횡단보도·신호등 등)에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성 심사제도’가 도입된다.

횡단보도 신호등 녹색시간 연장이 추진된다. 시는 경찰과 함께 횡단보도 보행 속도 산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으로 어르신, 어린이 등 교통약자의 보행속도에 맞춰 1.0m/s→0.8m/s로 완화할 계획이다.

또한 2016년까지 현재 14.5%인 저상버스 보급률을 41.5%까지 올려서 10대 중 4대는 저상버스로 운행하게 할 방침이며 정부는 비장애인 시선에 맞춰 설계된 시설물을 찾아내 개선하는 등 교통 약자의 불편을 줄여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