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행복
시청앞/ 행복
  • 방용식
  • 승인 2013.04.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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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10년여 전이다.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였던 권영길 씨는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며 유세했다. 권영길 씨의 이 말은 이후 개그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좌파이자 진보세력의 핵이었던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가 행복을 말한 것은 마땅했다. 그런데 행복을 살림살이와 연결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사람을 판단의 절대가치로 삼는 좌파가 과연 행복을 물질로 풀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을 만든 K. Marx도 생산수단의 소유여부로 계급을 나눴다는 것을 감안하면 권영길 씨가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물은 것은 크게 궤도를 벗어난 것도 아니다. 생산수단이 결국 물질이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것은 물질의 풍요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은 행복(幸福)을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껴 기뻐하거나 그러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행복은 행운과 연결되며, 자기만족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며, 일반적으로 잎이 세 개인 클로버는 행복을 의미한다. 우리는 때때로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클로버에 한정해 볼 때 행복을 찾다보면 행운도 함께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옛 사람들은 행복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성리학(性理學)의 원류인 정이(1033~1107)는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세 가지를 들며, 행복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불행의 첫째가 젊은 나이에 좋은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고(少年登科 一不幸), 둘째가 부모형제의 지위에 힘입어 좋은 관직을 얻는 것이며(席父兄之勢得美官 二不幸), 셋째는 재주가 뛰어나 글을 잘 쓰는 것(有高才能文章 三不幸)이라고 말했다. 요즘 말로 ‘엄친아’의 조건을 불행이라고 한 것이다.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하면 자신의 재능을 지나치게 믿게 되고, 부모형제에 힘입어 높은 관직에 오르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재주가 뛰어나면 자만(自慢)에 빠지게 된다고 뜻이다.

행복은 ‘자기’가 중심이 돼야 한다. 내 안에 만족스런 감정이 넘칠 때 행복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거짓이고 불행이다. 조선후기 선비 황덕길(1750~1827)은 ‘내 몫이 아닌 기쁜 일이나 실제보다 넘치는 영예를 사람들은 행운이라 하지만, 군자는 불행이라고 한다(非分之喜 過實之榮 人皆曰幸 君子惟曰不幸)’고 했다. 그리고 행복은 노력이다. 행(幸)과 신(辛)은 한 획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