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심리전
시청앞/ 심리전
  • 방용식
  • 승인 2013.04.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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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 유방(劉邦)은 초패왕 항우(項羽)와 해하(垓下)에서 다시 만났다. 실제로는 항우가 해하로 쫓긴 것이다. 군사들은 하나둘 도망가고, 식량은 떨어져 갔다. 유방과 천하를 다툰 지 5년 만에 형세는 유방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항우는 지원군을 바라며 성안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달빛도 소슬한 밤, 갑자기 성 밖에서 초(楚)나라 노래가 들렸다. 항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써 한나라가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이렇게 초나라 노래가 사방에서 들릴 수 있는가?” 절망한 항우는 애첩 우희(虞姬)와 애마 ‘추’와 이별 의식을 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내용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면초가는 사방이 적(敵)으로 둘려 싸여 있어 몹시 어려운 상황을 이르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사건의 경위와 결과를 생각해 보면, 사면초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고도의 전술이었다. 항우가 초나라 노래를 듣고 자기 땅 대부분이 점령당했다고 잘못 판단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전을 통해 유방은 별다른 수고나 희생 없이도 항우를 이겼다. 그 이전의 상고사(上古史)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중국 역사상 첫 심리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심리전 하나 만을 놓고 볼 때 북한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한수 위다. 북한이 협상에 앞서 조금씩 내놓는 살라미(salami)도 대표적인 심리 전술이다. 북한은 1948년 정권수립 이전부터 한반도 공산혁명을 노동당강령으로 내세운 뒤 대남 심리전을 끊임없이 벌였다. 1946년 8월 ‘서울공작위원회’를 조직하고, 1948년 10월에는 ‘대남사업부’로 승격시켜 심리전을 강화했다. 1970년대에는 심리전을 담당했던 조국평화통일서기국, 남조선문제연구소, 평양주재 한국민주전선대표부 등을 통합한 ‘통일전선부’를 만들었다. 개성공단 폐쇄를 언급한 김양건이 바로 통일전선부장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심리전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내는 물론, 평양 주재 외국대사관도 철수를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 그렇다. 의도가 빤하지만 북한의 공갈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전국책(戰國策)은 ‘나라가 비록 강하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國雖大, 好戰 必亡, 天下雖安 忘戰 必危)’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북 모두가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