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숭례문
시청앞/ 숭례문
  • 방용식
  • 승인 2013.05.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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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은 1910년 외교권이 없고, 국방권도 없어 허울뿐이던 대한제국을 강탈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역사를 하나씩, 하나씩 파괴하고 폄훼했다. 도성 서쪽정문인 돈의문(敦義門)을 완전히 헐어 전찻길을 냈고, 창경궁은 동물원이 있는 위락시설로 바꿨다. 경복궁 상당수 전각(殿閣)도 없앤 뒤 박람회장으로 사용했다. 숭례문(崇禮門) 양쪽 성벽을 헐어 찻길을 냈으며, 공식이름을 남대문으로 불렀다. 어쩌면 역사 시작 이래 문화를 전수했던 ‘상국’을 침략한 자신들의 배은(背恩)과 망덕(亡德)을 부끄러워한 까닭인지, 아니면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라와 백성이 무슨 예의를 따져 높일 수 있겠느냐며 비아냥대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해방 후에도 우리는 숭례문이란 정식명칭 대신 남대문을 그대로 사용했다. 1996년 11월 문화재청이 해방50주년을 맞아 숭례문으로 고쳐 정했는데도 흔적은 남아 있다. 남대문시장은 민간영역이라 차치할 수 있지만 공공영역인 남대문로, 남대문경찰서 등은 아쉬움이 크다. 일부는 숭례문이 도성 남쪽에 있는 문으로 남대문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5년(1396) 9월24일 기사를 근거로 들었다고 보인다. 실록을 보면 ‘성을 쌓은 뒤 각 문의 이름을 정했는데 정남쪽은 숭례문이라 하고, 속칭 남대문으로 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정식명칭은 숭례문이다.

숭례문이 5월4일 다시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약 5년3개월 전인 2008년 2월10일 오후 8시40분경 홧김 방화로 불에 타기 시작, 5시간 만에 무너져 내린 숭례문을 보면서 국민들은 허탈해 했다. 명색이 국보 1호인데 라며 정부당국의 무능함에 혀를 찼다. 숭례문이 국보 1호이기에 앞서 한민족과 함께 호흡해 왔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14번이나 우표디자인으로 사용됐고, 1982년에는 88서울올림픽 기념주화로도 발행됐다. 국민에게서 차지하는 숭례문의 위상을 보여준다.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는 강원도 삼척 준경묘에서 자란 금강소나무를 비롯한 국내산 육송 15만1369재(1재는 가로, 세로 각 30.5cm), 전통기와 2만3369장이 쓰였다. 동·서편 성곽도 원형을 살려 축조돼 한층 웅장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다가왔다. 문화재청은 4일 오후 2시 숭례문 앞에서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리다’를 주제로 복구기념식을 열고, 국민에게 숭례문 복구를 알린다. 600년을 이겨온 숭례문이 앞으로 600년을 더 우뚝 서 대한민국과 한국인과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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