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왔다갔다, 지방자치는 ‘궤도운행’
이상과 현실 사이 왔다갔다, 지방자치는 ‘궤도운행’
  • 방용식
  • 승인 2013.05.09 14:03
  • 댓글 0

기획 / 민선5기 3년 지방자치의 현주소

 

 

 

[시정일보-방용식 기자]지방자치 시행 22년이 흘렀다. 지방자치제가 다시(또는 처음) 시행되면서 가장 큰 성과는 ‘관존민비(官尊民卑)’ 현상의 파괴이다. 관선시대에 단체장들은 소위 ‘영감님’이었고, 공무원들은 상전이었다. 그렇지만 지방자치제는 이런 인식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국민 머릿속에도 ‘우리가 주인’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아 갔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셉 A. 슘페터(1883~1950)는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 뒤에는 부정적 측면도 적잖이 자리하고 있다. 지방재정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주민 참여도는 낮아 자치라는 용어가 부끄러울 정도다. 또 일부 지방의원들은 이권에 개입하고, 불법·탈법을 저질러 사법처분을 받아 지방의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여전히 높은데도 일부는 유급보좌관 타령을 한다.
이에 본지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행 22년을 맞은 지방자치 현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바람직한 모델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앞뒤 안 잰 복지사업 확충 등으로 재정여건 갈수록 악화 ‘자치여건 흔들’
단체장과 인연 맞아야, ‘동네중심’ 인사…능력 없다며 방출된 사람이 승진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지난달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개원 2주년을 기념, 정책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새 정부의 복지확대,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됐다. 세미나에서 연구원 측 김필헌 연구위원은 “국고보조사업 가운데 복지와 관련된 지방비 규모 1000억 이상 11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지자체가 4년간 추가 부담할 재정은 17조8900억에 이를 것이다”고 추정했다. 김 연구위원은 복지사무에 대한 중앙과 지방의 역할 재정립, 지방소비세율 인상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자체에 엄청난 재정압박이 초래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5일에는 금년 1/4분기 지자체 지방세징수액이 전년보다 4.4%, 4301억이 감소했다는 안전행정부 자료가 보도됐다. 지방세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2009년 전년대비 1.7% 감소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크게 줄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수감소는 무엇보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거래감면. 취득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10.4%인 3359억이 감소했고 담배소비세는 7.9%인 468억, 지방소득세는 2.1%인 337억이 줄었다.

위의 두 가지 사실은 지방재정의 현주소, 즉 ‘쓸 데는 많은데 쓸 돈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세미나에서 제기됐듯 정부의 복지정책 확대로 지자체는 4년간 17조8900억의 재정이 필요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세수가 덜 걷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재정운용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무상보육·교육 등 복지사업 확대일로
재정자립도 10년 만에 11.3%P 하락



재정적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 중 하나가 재정자립도의 약화에 따른 지방자치 동력의 쇠진이다. 재정자립도는 일반적으로 지자체 예산 대비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합산금액을 백분율로 수치화 한 것으로, 한 지자체가 필요재정의 얼마를 자체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A시에 전체 필요한 재원을 1000억으로 가정했을 때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으로 500억을 충당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상급 지자체가 준 교부금으로 메웠다면 재정자립도는 50%가 되는 것이다.

안전행정부의 ‘2013년 지자체 예산개요’에 따르면 금년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5%이다. 이는 1991년 지방자치제를 시행한 이후 최저수준으로, 그동안 지자체에서 끊임없이 제기한 ‘반쪽 자치’ 우려가 실제화 된 셈이다. 2003년 재정자립도 56.3%와 비교할 때 4.3%, 11.3%포인트가 하락했다. 그만큼 재정운용에서 지방의 자율성이 상실된 것이다. 재정자립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2004년에는 57.2%로 올랐으나 2005년에는 56.2%로 낮아졌고 2006년 54.4%, 2007년 53.6%, 2008년 53.9%, 2010년 52.2%, 2011년 51.9%로 하락했다. 2012년에는 52.3%로 약간 반등했지만 금년에 다시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재정에 여유가 있다고 여겨졌던 서울시도 2003년 재정자립도가 95.9%에서 2013년에는 87.7%로 10.7%포인트 내려갔다. 게다가 전국 시의 24.3%인 18곳, 군의 82.1%인 69곳, 자치구의 55.1%인 38곳은 지방세로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서울에서도 자치구 25곳 가운데 강남구·중구·서초구·영등포구 등을 제외한 10곳이 비슷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지자체의 복지사업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김필헌 연구위원에 따르면 지자체 복지지출 증가율은 금년 9.5%에서 2017년 10.7%로 늘어나고, 세출대비 의존재원 비중 역시 43.2%에서 46.5%로 높아진다. 특히 특별시·광역시 자치구 69곳 중 44곳이 예산의 44%이며, 50% 이상을 차지하는 곳도 23곳에 달하는 등 다른 유형의 지자체보다 사회복지예산 비중이 높다. 반면 시·군 지역은 40%를 넘는 곳이 1곳도 없고 30% 이상 지역도 2곳에 불과해 대도시 지역의 재정운용에 훨씬 어려움이 크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0~2세 보육료 100% 지원 시행으로 전국 지자체 예산운용이 극도로 어려워졌던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지자체들은 9월이면 관련 예산이 바닥나 6세 이하 보육료 지원도 시행할 수 없다면서 ‘정치인들의 선심’으로 지자체가 골병든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금년에는 박근혜정부가 6세 이하 무상보육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양육수당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복지확대정책을 추진하는 통에 지자체들은 올해 애초 정부안보다도 7266억이 많은 3조6157억을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0~2세 보육료 100% 지원으로 인한 문제에 또 다시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병규 한국지방세연구원장은 이와 관련, 대전일보 칼럼을 통해 “의존재원은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중앙지원금만큼 더 많은 사업을 벌이게 되는 일종의 ‘끈끈이효과’가 있다”며 “지방교부세 배분 시 지자체가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주적 재원운용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체장과 배경 다르면 ‘백약 무효’
눈칫밥 끝에 전출…옮긴데서 승진


2011년 8월 J구 의회에서는 3선의 J의원이 눈물 섞인 5분 발언을 했다. 이 의원은 ‘압박’을 이기지 못해 떠나는 후배를 지켜주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J의원은 당시 해당 자치구에서는 사무관 10명, 주사 20명이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자치구는 특정지역 출신이 전체직원의 70%를 차지하는 등 인사운영에 문제가 있어 그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자치구에서는 특정지역 출신 직원 여럿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자치구 공무원이 다른 자치구로 옮기는 것은 ‘인사교류’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새 구청장이 들어설 때마다 구청장들은 모임을 갖고 사무관 몇 명, 주사 이하 몇 명 등의 형식으로 다른 자치구나 서울시로 보낸다. 해당자들이 반발할 경우 ‘파견’을 보내는 식이다. 지난 3월에도 일부 자치구에서는 사무관 1명, 주사 2명, 7급 이하 5명을 교류했다.

하지만 인사교류는 자치구 인사운용에 탄력성을 부여,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일반적으로 ‘보기 싫은 놈 쫓아 보내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선체제 출범이후 이런 일은 계속됐고, 새 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공무원들은 승진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서울 자치구 역시 2006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이 다수를 차지했을 때 호남출신 직원들은 민주당 출신이 구청장으로 있는 중구·은평구·강동구 등으로 몰렸다. 민주당이 승리한 2010년에는 반대 양상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은 호남출신 직원을, 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영남출신 공무원을 전출 보냈다. 능력이 없거나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으나 정작 전출당한 공무원은 오히려 승진을 했다. D구로 전출한 J과장은 국장으로, 인근 J구로 간 K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했다. Y구로 간 과장은 총무과장을 맡았으며, S구로 간 6급 직원은 동에서 근무하다 구청 총무팀장으로 영전했다. D구에서 J구로 간 과장은 J구에서 과장으로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상사 1위로 평가받고 있다. N구에서 5년3개월 만에 5급으로 승진한 H씨는 서울시로 밀려났다. S구의 K씨는 4년을 특별사법경찰로 있다가 5년여 만에 5급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결국 전출사유는 다름 아닌 구청장과 고향이 다른 것이었다는 얘기이다. 서울시 한 자치구 사무관은 “이럴 바에야 뭣 하러 지방자치를 하느냐, 지방자치가 공무원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 차라리 관선제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方鏞植 기자 / bays1@sijung.co.kr




재정 어려운데 의원보좌관?…국민 신뢰도 회복 선결과제


연간 427억. 광역의회에 유급 의원보좌관을 두었을 때 소요되는 비용이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난 4월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광역의회 유급보좌관 도입 연내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유급보좌관 논란은 다시 가열됐다. 유 장관은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일종의 ‘멍석 론’이다. 유 장관의 발언에 대해 광역의회는 쌍수를 들며 환영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에서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정적 입장을 제시했다. 가뜩이나 지방의회 무용론이 대두되는데 한 술 더 떠 유급보좌관까지 둘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방의회 유급보좌관 도입은 민선단체장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의원들은 틈나는 대로 의회인사권 독립과 함께 보좌관 도입을 주장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2월 청년일자리 확충을 핑계로 보좌 인력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했다가 당시 행정안전부로부터 거부당했고,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다. 서울시의회는 이때에도 매년 30조가 넘은 예산과 기금을 심의하고, 연평균 450건의 안건을 처리하며,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감시하기 위해서는 보좌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좌관이 필요하다는 지방의회 주장과 안전행정부의 설명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지방의회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의안발의건수가 연간 평균 0.8건에 불과한 상황에서 1인당 5000만원 상당의 유급보좌관 신설을 반길 국민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다. 지방의회는 지난 1991년부터 2005년까지는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그러나 젊고 전문적인 인력을 지방의회로 유도하고 지방의회 활성화를 꾀한다는 목적으로 2006년 유급제로 전환했다. 지방의회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게 통상적인 국민생각이다. 지방의회 4곳 중 1곳 꼴인 55곳은 지난해 경기침체로 많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의정비를 평균 4.5% 인상했다. 경북 영천시의회는 무려 16.5%를 인상했고 강원 화천군의회는 8.8%, 부산 서구의회는 7.4%, 경기 김포시의회는 7.3%를 올렸다.

지방의원들은 평균 4000만원~6000만원의 의정비를 매년 받는다. 이뿐 아니라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복지포인트를 받는 곳도 있다. 또 의회운영에 필요한 의회사무국(과) 인력, 사무실, 기타 경상비를 감안하면 훨씬 비용이 많아진다. 대의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지방의회이지만 생산성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