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시민의 조건
시청앞/ 시민의 조건
  • 방용식
  • 승인 2013.05.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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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 간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는 ‘시’도 아닌 ‘군’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난 이제 시민이 아니라 도민, 군민이다.” 그때 장난삼아 “도민, 군민과는 어울리지 않을 테요”라고 말했다. 시민과 도민, 군민은 서울과 지방,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군이 시로 행정적 위치가 변하는 것을 ‘승격’한다고 한다. 기초자치단체를 부르는 순서도 시, 군, 구이다. 2008년 충남 당진군은 시로 승격하기 위해 군청이 나서 위장전입이라는 불법행위를 벌이다 적발됐다. 결국 2012년 1월1일이 돼서야 소원을 이뤘다. 당진군민은 당진시민이 됐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행정구역상 시에 거주하는 시민일 뿐이다. 2013년 5월 대한민국에는 서울시와 광역시 6곳을 포함해 모두 83개의 시가 있다. 편하게 말하면 83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시민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의 ‘시민’은 무얼까.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은 ‘재산이 있는, 교양 있는 사람’으로 부르주아를 일컬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범위가 너무 넓고, 자의적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민은 자유민이었다. 이런 까닭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Aristoteles(BC 384~322)의 ‘시민’에 대한 개념화는 참고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Politika>에서 ‘시민’을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는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시민을 규정하는 데 반대했다. 고소하거나 재판받는 법적 권리만으로도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시민’은 재판업무와 공직에 참여하는 사람 또는 계층이다. 시민은 공직자를 선출해 지배받거나, 스스로 공직을 맡아 시민을 지배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는 ‘지배받지 않은 사람은 지배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작용한다. 마키아벨리 역시 로마공화정을 “시민은 높은 직위에 있다가 낮은 지위로 이동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찬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의 조건을 공동체 번영을 향한 노력으로 정의했다. 뱃사람에게는 안전한 항해가 목적이듯 시민은 공동체 안정을 위해 힘을 모으고 협력하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대화방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지나면서 한 노인이 무료신문을 수거하다가 떨어뜨렸다. 차량 한복판에 신문이 떨어져 이동에 불편했을 수 있지만 경복궁역에 내릴 때까지 누구도 신문을 줍지 않았다. 경복궁역 인근에는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정부서울청사와 현대상선 등이 있다. 대한민국 시민은 단지 ‘시’에서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