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인연
시청앞/ 인연
  • 방용식
  • 승인 2013.05.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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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朝子)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천득(1910~2007) 선생의 ‘인연’이라는 수필의 끝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피천득 선생은 동경 성심여학교에 다니는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그리움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인연은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이 넓은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런 만남 자체가 불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를 악연(惡緣)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악연이 존재하며, 인연을 좋고 나쁨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우주에서 돌을 던져 지구에 떨어질 확률은 약 100시 분의 1이라고 한다. ‘시’는 수학에서 얘기하는 수치로, 10의 24제곱이다. 현재 알려진 대로 우주에는 1000억 개의 은하가 있고,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에 1000억 개의 별이 있다고 간주할 때 그런 확률이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한반도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인연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또 불가(佛家)에서는 인연이 억겁(億劫)의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겁’은 산스크리트어 kalpa에서 비롯한 말로 ‘겁파’ 또는 ‘갈랍파’로 음역되며, 시간의 단위로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하는 장시(長時)로 번역된다. 힌두교에서는 1kalpa를 86억4000만년이라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감히 인연을 좋고, 나쁨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그저 마음에 들지 않은 인연이면 좋은 인연으로, 좋은 인연이면 더욱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 가면 된다. <맹자>에는 “어떤 사람이 내게 함부로 대한다면 내가 그 사람을 정성껏 대하지는 않았는지 반복하고 또 반복해 생각하라”는 내용이 있다. 결국 좋은 인연을 만드는 첫 걸음은 우선 나부터 진실 되게 돌아보고,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결심에서 출발한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필자의 <시청앞> 연재를 마친다. 때로는 어눌하면서도, 견강하며 부회하기도 했던 덜익은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늘 어디서나 언제나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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