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행복주택 공청회에 무슨 일이?
기획/ 행복주택 공청회에 무슨 일이?
  • 이승열
  • 승인 2013.06.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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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주민들 공청회 습격…행복주택 가시밭길 예고

7개 시범지구 지자체ㆍ주민들 강력 반발
주민의견 무시한 '졸속ㆍ탁상행정' 비난
주민 반대 '전형적 님비현상' 평가절하
사회적 갈등 조짐…소통 통한 해법모색

 

 

[시정일보] 박근혜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인 ‘행복주택 프로젝트’가 난관에 봉착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7개 시범지구의 지자체 및 지역주민들이 지역주민을 무시하고 지역사정을 반영하지 않은 졸속 추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 반면 정부는 지자체와 충분히 협의를 통해 추진해 왔고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전형적인 님비(Nimby)현상일 뿐이며 무주택자들의 주거안정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함께 공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새롭게 사회적 갈등의 표본으로 떠오른 행복주택, 그 해법을 풀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 지역주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행복주택 때문에 불행, 난장판 된 공청회

지난 12일 오후 2시 ‘행복주택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열린 경기도 안양시 국토연구원 G20홀은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 150여명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양천구 목동, 노원구 공릉동, 안산시에서 온 주민들은 “행복주택 지정 당장 철회하라” “졸속(탁상)행정 국토부는 각성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공청회장에 자리잡았다.

 

▲ 목동 행복주택 건립반대주민비대위 소속 목동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청회 첫 순서로 이재평 국토교통부 공공택지기획과 서기관이 ‘행복주택 정책소개’라는 주제로 발표하던 중 주민들에 의해 공청회는 중단됐다. “환경분석 및 현지실사를 4~5월에 진행하고 서울시 등 지자체 및 철도공사 등과 사전협의를 완료했다”는 발표를 문제 삼아 고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주민들은 “정말로 지자체와 사전협의했나?”, “언제 협의했느냐?”, “거짓말하지 마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반발로 공청회는 2시간 가까이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한 주민은 공청회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발표자들과 토론패널들은 분명히 청사진을 제시할 것인데 우리는 지자체와 주민 의견을 다 무시하고 탁상에서 만든 청사진을 듣자고 온 것이 아니다”라며 “지역 의견을 파악해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그려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 행복주택 의견수렴 공청회 패널토론 도중 주민들이 토론 단상 앞에서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공약이자 핵심 부동산 정책인 ‘행복주택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행복주택 프로젝트는 국유지인 철도용지 위에 인공대지를 만들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으로, 박근혜정부가 하우스푸어(house poor)와 렌트푸어(rent poor)를 위해 추진하는 공약사업이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서울 6곳과 경기도 안산시 1곳 등 수도권 7곳의 철도용지와 유수지 등에 행복주택 1만50가구를 짓겠다는 발표가 나온 뒤 각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7개 시범지구는 △구로구 오류동지구 오류동역 일원 △서대문구 가좌지구 가좌역 일원 △노원구 공릉동지구 경춘선 폐선부지 △양천구 목동지구 목동 유수지 △송파구 잠실지구 잠실유수지 △송파구 송파지구 탄천유수지 △안산시 고잔지구 고잔역 일원이다. 이중 양천구와 노원구, 그리고 경기 안산시가 공식적으로 건립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황이며, 다른 시범지구들 역시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와 주민들은 정부가 시범지구 지정 시 해당 지자체 및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사업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 또 가뜩이나 인구밀도가 높아 교통난, 학교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곳에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기존 주민들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의 삶의 질도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철도부지와 유수지에 들어서는 행복주택의 특성상 소음과 진동 및 악취 문제로 인해 열악한 환경과 안전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안산시의 경우 기존 임대주택단지가 조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행복주택을 철도역사에 짓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행복주택 선정에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를 했다는 입장이다. 또 철도부지와 유수지 위에 건설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의 임대주택과 달리 행복주택 단지 내에 사회적 기업 등을 유치해 입주민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함께 잘 살 수 있는 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양천구 “목동 이미 포화상태, 유수지 안전도 우려”

목동행복주택 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신정호, 이하 목동비대위)는 우선 양천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아 모든 것이 포화상태라는 입장이다. 지금도 교통정체가 심각하고 각 학교가 과밀학급으로 운영되고 있어 여기에다 추가로 2800세대의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양천구 전체가 교통지옥이 될 뿐 아니라 학교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어린이집, 학교 등 필수적인 사회기반시설을 함께 갖출 수 있는 공간조차도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목동 유수지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양천구는 수해가 많은 지역이고 큰 비가 오면 양천구 전역의 빗물이 목동 유수지로 모이기 때문에 건축을 제한해 왔는데, 특별법까지 제정해 유수지 위에 초고층 주택을 짓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양천구는 서울시 자치구 중 임대주택이 네 번째로 많아 형평성 문제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현재 구의 재정자립도로는 이후 구민들의 복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신정호 목동비대위 위원장은 “우리는 행복주택 그 자체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을 집값 하락 등 지역이기주의로 보면 곤란하다”며 “다만 지역적인 특성과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시범지구로 지정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뿐”이라며 지역 특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천구 역시 공식적으로 반대 행보에 나섰다. 전귀권 구청장 권한대행은 국토부의 시범지구 지정 이후 지난달 30일 국토부와 면담을 갖고 행복주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전 권한대행은 “정부는 행복주택 건립 반대를 님비 현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주민과 소통 없는 정책에 대한 거부로 인식해야 한다”며 “구유지 사용승인 신청 거부 등 모든 권한을 동원해 건립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행복주택과 같은 대규모 주택단지 건립은 사전에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 및 해당 지자체 등 관련기관과 충분한 협의 후 대상지를 선정해야 하는 만큼 양천구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대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원구 “경춘선 폐선부지 지역 특성 고려해야”

노원구 역시 공릉동 경춘선 폐선부지가 행복지구 건설 시범지구로 선정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선 노원구는 공릉동 경춘선 폐선부지가 다른 지역의 ‘철도역사’ 및 ‘유수지’와 함께 시범지구로 선정된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부지는 오랜 기간 동안 경춘선 운행으로 소외됐던 지역을 경춘선 폐선 이후 지역주민과 자치구가 서울시와 함께 논의해 공원화하는 사업을 진행 중인 곳이라는 것이다.

노원구는 “경춘선 폐선구간 확정 후 이 일대 공원화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설득해 지난해 12월 공원화 사업에 대한 MOU 체결을 이끌어 냈다”며 “공릉지구는 문화·체육시설이 전무한 주거밀집지역으로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지난 7년 동안 서울시와 협의해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1단계 산책로 및 자전거길 조성 공사를 마치고 2단계 사업을 서울시와 검토·협의하고 있는 마당에 국토교통부가 지역 주민들의 사전 의견수렴도 없는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공릉행복주택 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황규돈, 이하 공릉비대위)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릉비대위 황규돈 위원장은 “공릉동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춘선 철로 때문에 지역공동체가 둘로 나뉘어 오랜 기간 불편을 겪어왔다”며 “이 부지를 공원화하고 신공덕역부지를 문화복합시설로 개발한다는 서울시와 노원구의 계획에 지역주민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시범지구 선정으로 지역주민의 바람은 다시 무시당하게 됐다”며 분개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지역주민들은 경춘선 폐선부지 및 신공덕 역사에 복합문화시설 건립을 강력히 원하고 있고 노원구청도 주민들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며 “또 노원구의 공공 임대아파트는 2만4374호로 서울시 전체의 16%를 차지해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아 자치구간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임대주택 추가 건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구청장은 “이번 공릉지구 행복주택 시범지구 선정·발표는 지역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다”며 “정부에서 추진 중인 행복주택 건립 철회를 거듭 요구해 우리구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주택자 주거안정 대승적 목표 공감해야

 

지역주민들이 우리 지역은 안된다고 무작정 거부할 것이 아니라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이라는 목표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청회 패널토론에 참여한 권지웅 민달팽이 유니언 대표는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기지역은 안된다고 나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현재 공공임대주택은 매우 부족하며 청년들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지방에서 올라왔거나 집이 없는 가정에 태어난 것은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논의해서 공간을 함께 활용한다든지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라고 함께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을 것을 주장했다.

역시 패널로 참석한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처장도 “주택 공급은 복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중앙정부와 공기업이 다수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행복주택은 기존 임대주택과 다르게 사회적 기업, 일자리 창출 등이 접합돼 있는 차별성이 있기 때문에 지자체와 지역주민들도 함께 논의해서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