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우울한 예결위원장
기자수첩/우울한 예결위원장
  • 문명혜
  • 승인 2013.12.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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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서울시 자치구 예결위원장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나같이 “이번 예산안처럼 심의하기 민망하고 힘든 예산은 없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무원들 월급주기도 빠듯한 예산안을 심의하는 게 우울하다는 것이고, 신규사업이나 미래를 대비한 어떠한 일도 벌일 수 없는 초긴축 예산안을 들여다 본 후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온 것이다.

김원중 성북구의회 예결위원장은 보조금 등 의존재원 비율이 크게 늘어나 성북의 재정자립도가 낮아진 것을 확인한 후 안타까워했고, 이기돈 서대문구의회 예결위원장은 볼룸이 커진 예산안이 중앙정부가 위임한 사무의 결과물일 뿐 세입이 오히려 감소한 것을 보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장우윤 은평구의회 예결위원장은 신규사업 재원을 구유지 매각으로 마련한 것을 보고 괴로워했다. 집 고치려고 대대로 가꿔 온 문전옥답을 팔아야하는 농부의 심정에 다름 아니다.

자치구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서울시의 곳간 사정도 전혀 바를 바가 없다. 예전처럼 자치구에 뭉칫돈을 내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서울시의 자체 신규사업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박래학 서울시의회 예결위원장은 “가정에서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결국 길거리에 나앉는다”며 허리띠를 조여맨 서울시의 예산안을 호평할 정도로 오로지 빚 갚는데 전력을 쏟고 있는 중이다.

자치구 예결위원장들의 공통된 의견은 양극화 심화의 결과로 돌봐야 할 주민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복지분야에 더 많은 예산이 투자돼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정부의 지원없이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경기둔화와 부동산 거래 침체 등으로 세입은 감소하는데 정부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의 예산을 제대로 내려 보내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적정예산을 지원받거나 지방세를 올리지 않으면 기초단체의 예산상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많은 지방자치 수행자와 관계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지방자치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재정분권이 이뤄지지 않은데서 찾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 온 얘기라 진부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방자치도 돈 없인 안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