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종로, 광화문 이야기
기고/세종로, 광화문 이야기
  • 시정일보
  • 승인 2014.08.0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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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남 <전 종로구의회 의장>

 

[시정일보]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자 세종로 광화문 광장이 탄생됐다.

역사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 규모로 뚫은 대로로써 정부관서인 6조와 한성부 등의 주요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앞’ 또는 ‘육조거리’라고 부르기도 했고 세종로 사거리에 해태석상이 있다 하여 ‘해태앞’이라고도 했으며, 1902년에 세운 비전 때문에 흔히 ‘비각앞’이라고도 불렸다.

광화문네거리 일대는 나즈막한 황토언덕이 있다 하여 ‘황토마루’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가 1946년 10월1일 옛 중앙청 정문에서 황토현 사거리까지의 길이 500m 구간을 도로로 지정한 뒤 세종의 시효를 따서 세종로라는 명칭을 붙였다.

1995년에는 광복50주년을 맞아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건물 장암돔청탑이 대형기중기에 의해 해체됐다. 일제가 1926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 건물을 세움으로써, 훼손됐던 경복궁의 위용이 70년 만에 제 모습을 찾게 됐다.

도로면적도 일제강점기에는 53m로 축소됐다가 1952년 3월25일 현재의 너비로 확정됐으며, 1984년 11월7일 세종로사거리에 중앙청까지 기점 및 종점을 변경하고 길이도 현재와 같이 됐다.

2008년 5월에는 역사복원, 조망권 확보, 문화공간 창조를 위한 공사를 시작해 도로 중앙에 넓이 34m, 길이 557m의 광화문광장을 조성하고 2009년 8월1일 개방했다.

이로써 기존 왕복 16차선이 10차선으로 줄어들었다.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를 차량중심에서 인간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 조망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해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추진돼 현재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거리와 청계천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조성됐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자리하는 한국의 대표광장에는 2009년 10월9일 한글날에 총높이 9.5m의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서고 동상의 지하공간에 세종이야기 전시관이 개관됐다. 세종문화회관과 이순신장군동상 사이에 시민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에는 이용객을 위한 편의시설과 만남과 약속의 장소 등 문화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이순신장군동상 주변에 조성된 도심 속의 광장에는 세종로의 상징이자 도시경관축의 중심지로서 상징성을 나타내고 연못과 바닥분수 등 수경시설을 설치해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하는 듯한 이순신장군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다.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 사이에 청계천 연결부는 청계천과 경복궁을 연결하는 보행네트워크의 연결축으로 조성됐다.

이렇게 훌륭한 문화예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세종로와 광화문을 거닐다보면 양쪽 10차선 차도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차도를 보면 도로의 땜질자국, 울퉁불퉁한 도로표면, 돌이 파손되고 떨어져나가 차량바퀴에 마찰되어 더덕더덕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차량, 때로는 도로가 파헤쳐져 있는가 하면 운전을 하면서 이곳을 달리면 차량바퀴와 지면이 닿는 소리가 제법 요란스럽다. 일반도로 아스콘 씌운 곳만도 못한 차도. 과연 세계최고의 문화거리로 조성된 길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들은 하늘과 건물, 경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로도 보고 간다.

오는 8월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 세계 각 나라 추기경들과 귀빈 60여명이 참석하는 광화문광장 행사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여기저기 뜯기고 파인 도로상태가 걱정이다.

거리를 거니는 시민들이 잠시 쉬기도 하고,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광화문 세종로 육조거리를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지인과 함께 거닐 수 있는 광장이 됐으면 한다. 세종로 광화문광장이 600년이 아니라 천년만년의 문화예술이 숨 쉬는 광장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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