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서울수복을 생각하며
9.28 서울수복을 생각하며
  • 시정일보
  • 승인 2014.09.04 13:24
  • 댓글 0

정진호 실무관 (서울보훈청 보상과)

[시정일보]돌아오는 9월28일은 6.25전쟁 당시 전세를 역전시키고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줬던 서울수복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생활하며, 다양한 경제ㆍ문화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수출 7위로 경제적으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자동차, 선박, 전자, 통신/IT 등 여러 방면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키워가며 2010년에는 당당하게 G20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도하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이러한 대한민국은 60여년 전 북한 공산군의 선제 기습 이점과 전투력의 압도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사흘 만인 6월28일 수도 서울을 점령당했다. 당시 미군 또한 주력부대는 대한민국에 주둔을 하고 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부담스러웠던 미군도 별개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의 여유를 부리며 남진을 해왔다.

서울은 폐허가 되었고, 전쟁 초기에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이 사실상 맨주먹이나 다름없었던 국군은 필사적인 지연전을 벌여 적의 진출을 늦춘 다음, 9월 초에 낙동강 방어선으로 물러나 배수진의 결의 아래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북한군은 아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차례의 총공세를 감행했으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적의 주력 부대는 아군의 지상 화력과 공중 폭격으로 소진되어 초기의 우세를 상실했다. 이에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파병이 이루어지면서 국군과 유엔군의 전력은 북한을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9월15일 그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이 이루어지면서 그간의 전세를 뒤엎을 수 있게 됐다.

곳곳에서 패퇴한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달아나기에 급급하였다. 북한군은 9월23일까지 사흘 동안 끈질긴 저항을 계속했으나, 9월24일 한미 해병대는 공군과 포병의 화력 지원을 받아 최후의 돌격을 감행한 끝에 이튿날인 25일 마침내 중요 거점들을 빼앗았고, 전투는 시내에서 시가전으로 좁혀졌으며, 몇 일간의 전투 끝에 9월27일 새벽 국군 제17연대와 해병대 용사들은 중앙청으로 돌입하여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그 잔당을 소탕하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했다. 9월 28일 정오 감격의 수도탈환식이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됐다. 결국 북한의 남침으로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했다. 이렇게 3개월만의 서울수복은 북진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고, 통일을 꿈꿀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이 됐다.

지금 서울은 국제도시로서의 위용을 당당히 뽐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유수 기업들이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고, 한류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매년 외국인들이 찾고 싶은 도시로 변화를 거듭해 가고 있다. 서울을 가로 지르는 한강의 야경은 프랑스의 뽕네프의 다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함과 운치를 가지고 있어 서울의 자랑이자 대표적인 장소 이다.

한국전쟁 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의 수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무력도발은 휴전 이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안보 의식을 제대로 세우며 국방을 튼튼히 해야지만 다시는 이 땅에 위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는 60여년 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되찾고 나아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굳은 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