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깨처진 공무원
<기자수첩>어깨처진 공무원
  • 문명혜
  • 승인 2014.10.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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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문명혜 기자]내년도 예산편성을 앞둔 자치구 공무원들이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시기적으로 새해 설계를 위해 사업계획을 가다듬고 예산매칭을 손질할 때지만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이다.

지난해 무상보육비에 이어 금년 7월부터 기초연금까지 부담을 안게 된 자치구의 재정 여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어깨가 처져버린 것이다.

복지수요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예산지원은 없고 대통령의 공약사업마저 지방정부가 일부 부담을 하게 되니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원성이 높아져 간다.

자치구의 한 예산담당 공무원은 내년은 먼 얘기고 지금 당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사정을 설명하면서, 조만간 시행초기인 기초연금 지급도 중단될수 있음을 내비쳤다.

또다른 공무원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곳간 사정을 너무 모른다고 푸념을 쏟아낸다. “얼마전 언론보도를 통해 정부 관계자가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용 운운하는 걸 보며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속마음을 내비친후 ‘탁상행정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인사교류가 필요하다는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한 자치구 구청장의 자조 섞인 푸념은 자치구 예산사정을 더욱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한다. 구청장이 되고 나서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돈이 별로 없어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는 본격적 지방자치 실시 20년이 되도록 국세 지방세 비율, 8:2가 변하지 않는 게 우리의 지방자치가 전혀 진화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해석하면서, 예산지원 없이 국가사업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정부의 행태에 분개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해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것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국가사무인 복지확대 예산의 일부 부담을 요구받고 취득세 감면조치까지 이어지자 정부의 예산지원이 없으면 복지사업 대행업무를 하지 못하겠다는 ‘복지디폴트’ 선언을 예고하게 된 것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지방세 세목을 늘려주거나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 지자체에 나눠주면 되는 것인데, ‘증세없는 복지’를 약속한 현 정부가 ‘파격조치’를 취해 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온 산을 갈색과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단풍의 계절. 내년도 자치구 살림계획을 짜고 있는 공무원들의 어깨가 점점 더 땅 밑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