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무너지는 왕조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특별기고/무너지는 왕조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 시정일보
  • 승인 2014.11.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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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시정일보]1972년 7·4 공동성명은 박정희-김일성 작품이다. 2000년 6·15성명은 김대중-김정일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들은 당시 통일부, 정보부 등 대북관련 부서와 이들에게 자문하는 학계, 전문가들의 지혜와 경륜의 총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성명의 眞實은 세계가 환호하던 데에서 아주 멀다.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대북전략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대전략을 숨기고 있으면서 각각 ‘시간은 우리 편이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전략가이었을 것이다.

박정희-김일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김정일에 간파되고 농락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경의선, 동해선 철도, 도로를 연결하고 개성공단을 여는 것은 쇼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결과적으로, 종북좌파가 창궐한 점에서 김정일의 계산이 좀 더 영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월에서 11월의 편리한 시기에 열자던 남북고위급회담이 지나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부르지도 않은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오는 등 법석을 떨었으나 오늘의 남북정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왜? 답은 대북 전단이다. 탈북자들이 날려 보내는 전단은 김정은에 치명적이다. 이를 어떻게든지 막으라는 김정은의 오더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고위급회담은 이를 관철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실무선에서 이를 집행해야 할 정찰총국장 김영철은 2004년 남북선전수단 철거를 관철한 장본인이다. 북은 ‘남은 밀어붙이면 된다’는 김대중-노무현 이래의 경험에 기대를 걸고 김정은의 오더가 관철되기까지 기다려보자는 속셈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원칙과 신뢰’를 고집하고 있는 ‘불통’ 박근혜는 노무현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들이 하는 전단 살포를 정부가 저지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북에서 보자면 남한 정부에서 성의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지 않느냐는 것일 것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그랬다. 中情에서는 이런 일들을 능숙하게 해치웠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북한의 동무들은 한국에서는 대통령도 제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政治 過剩 상태에 빠진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대북 전단을 ‘쓰레기’라고 하고, 이를 보내는 탈북자들은 ‘쓰레기’라고 하면서 북한에 ‘쓰레기를 뿌리는 것을 방지하자’는 환경운동 논리와 법규를 동원하고 있는데 모두 남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경한 표현이요 억지다.

이것들은 황잡엽 비서가 망명하였을 때의 수작들인데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자들이 북한의 하수인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김정은은 앞으로 과연 어떤 작품을 낼 것인가? 문제는 박정희-김일성, 김대중-김정일은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나 박근혜-김정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치와 외교가 별개일 수 없다. 김일성은 왕조를 창건한 신과 같은 존재였고, 정일은 방원과 같이 권력을 지켜내는데 빈틈이 없었다면, 정은은 단종과 같이 어리고, 연산군과 같이 어설퍼 보인다.

마키아벨리가 갈파하듯이 권력자는 두려워 보여야 한다. 主君이 어리고 만만해 보일 때 漢의 十常侍 같이 侍衛들이 칼부림을 하는 것은 말기에 접어든 정권의 공통된 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