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재정난에 존폐위기까지 겪는 지방자치
<단체장칼럼> 재정난에 존폐위기까지 겪는 지방자치
  • 시정일보
  • 승인 2014.12.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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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식 강동구청장

[시정일보]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서 며칠 전 의회에 제출해 놓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산편성이라 말하기도 멋쩍다. 강동구 내년 총예산 4,361억원 중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3%를 넘었다. 여기에 공무원 인건비를 포함한 행정운영경비 25%를 제외한 나머지 20% 남짓한 예산으로 각종 주민 편의사업을 챙겨야 한다. 주민들이 바라는 구립어린이집 확충, 작은도서관 신설, 보훈병원 남측도로개설 등 공약사업은 끝내 예산안에 넣지 못했다. 심지어 전국 최초로 도입해 지역 내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친환경급식 지원마저 줄여야 했다.

20년간 지방자치의 현장에 있어온 한사람으로서 돌이켜보면 지방자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지방재정의 자주권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가용재원은 ‘제로’에 가깝고 ‘복지디폴트’의 우려가 일상화된 상황이다. 전국 227개 지자체 가운데 자체 세입으로 인건비도 해결 못하는 곳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는 심각한 지자체 재정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2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흔히 ‘2할 자치’라고 한다. 지방자치의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지방세의 비율을 높여가야 한다. 6:4정도가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7:3은 돼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2할의 지방세 중 실제 자치구 자체재원은 10%도 안된다는 점이다. 시세와 자치구세의 비율은 9:1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치구세는 등록면허세와 재산세가 세원인데 지속적인 부동산 경기침체로 세입은 거의 늘지 않는 실정이다.

이렇게 자치구의 세원구조가 열악하다보니 서울시로부터 재원을 보조 받아 살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존재원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재정자립도의 하락을 초래한다. 우리구의 경우 그나마 44~48% 정도로 유지하던 재정자립도가 2014년에 30%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2할 자치’ 현실에서 재정자립도가 큰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지만 지방재정의 자율성 악화는 ‘자치 없는 지방자치’ 경향을 가속화시킨다. 민생과 직접 관련된 것은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하고 그에 필요한 재정권을 지자체에 주어야 한다.

한편 지난 11월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에서는 정부가 지자체와 협의 없이 증액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예산 일부에 대해 2015년 예산 미편성을 결의했다. 우리구는 57억원 정도 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예산편성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편성을 할 수가 없었다. 이는 정부가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등 복지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자체의 재정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자체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데 그 원인이 있다. 지자체는 최근의 복지 확대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재원도 마련하지 않고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의 상황이 이런데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서울시의 경우 구청장은 직선으로 선출하되 구의회를 없애고, 광역시의 기초단체장은 임명직으로 하고 의회도 없애는 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지방재정의 자주성을 높이는 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대도시 자치구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정부의 중앙집권적인 발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봐도 광역단체를 없애는 경우는 있어도 풀뿌리민주주의의 풀뿌리를 뽑는 경우는 없다. 30~60만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자치구에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없는 게 말이나 되는가. 자치구를 단순히 예산의 집행기관으로 보거나 광역단체의 출장소 정도로 여기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이는 명백히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민주주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