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블랙홀에 빠진 지방자치 ‘메이데이 메이데이’
복지 블랙홀에 빠진 지방자치 ‘메이데이 메이데이’
  • 윤종철
  • 승인 2015.01.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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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시리즈/ 지방자치 현주소 ❷ 지자체 복지디폴트

[시정일보]1995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절대 빠뜨려서는 안될 굵고 빛나는 획이 그어진 해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시장과 구청장, 군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선출했던 권위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주의로 가는 관문의 빗장을 풀더니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마저 활짝 열어 젖힌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지방자치는 성년기로 접어들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의 지방자치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동장군의 맹위를 떨치고 기어이 밝아 온 을미년 새아침을 기념해 본지는 우리의 지방자치 현주소를 돌아보고 발전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의 장을 마련코자 한다.
신년기획을 해 온 건 본지의 오랜 전통이며, 기획의도는 그동안 누차 밝혀왔듯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달려온 본지의 사명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올해 본지가 선정한 네 개의 주제는 지방분권과 관련한 자치조직권 확대요구와 지자체의 복지디폴트 위기, 서울시 최대 현안중 하나인 도시재생 문제, 공무원의 사기를 높이는 행복사업 등 임을 밝혀둔다.
이번호에서는 국가매칭 복지예산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자치단체들의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서ㆍ은평ㆍ노원구 복지비 60% 이상 차지 ‘예산멘붕’
기초연금ㆍ영유아 보육료 등 미반영, 4분기 지급 불능
서울시-자치구 TF팀 구성 ‘국비 5% 인상’ 강력 촉구



2년 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던진 보편적 복지 정책이 2015년 일선 시군구 지방정부에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고 있다. 무상급식에서 무상보육, 기초연금으로 이어진 복지확대는 지방자치단체들로 하여금 이를 충당하기 위해 안전ㆍ환경ㆍ경비 등 생활 밀접 사업 예산의 삭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마저도 바닥을 드러내면서 결국 예산을 미반영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시정신문이 새 해 예산 편성시기를 맞아 서울시 25개 일선 자치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 예산 대비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 자치구가 절반이 넘었으며 그 중 강서구와 은평구, 노원구 등은 60%를 넘어서고 있었다.

쉽게 말해 복지비 60%가 넘는 자치구의 경우 30%이상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감안하면 실제로 자치구가 구민들을 위해 시행할 수 있는 구정 운영경비는 채 10%도 되지 않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자치구들은 올 해 예산 편성에서 기초연금의 경우 상반기(6개월 분) 예산만 반영했으며 영유아보육료와 가정양육수당 등은 일부를 미편성 하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표 참조)
예산 담당자들은 “직원들의 시간외 수당과 업무추진비 등 직원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심지어 인원을 감축해도 예산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그야말로 마른 걸레에서 물기를 짜내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각 구청들이 예산을 미반영 했겠나”라고 토로하고 있다. 한편 이에 따라 각 지자체 예산 담당 팀장들은 이르면 9월말이나 10월 부터는 복지디폴트(지급불능)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복지비 매칭사업의 ‘늪’


일선 각 자치구 예산 담당자들은 복지비의 ‘매칭사업 구조’를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다. 매년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다른 복지 예산이나 도시기반시설 예산 비용에서 빼서 우선적으로 충당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소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다.

이는 매칭사업이 법정경비로 분류되기 때문인데 본예산이든 추경예산이든 예산을 배정할 땐 어디나 법정경비를 우선적으로 충당해야 된다.

현재 지자체의 복지사업 대부분이 이 같은 매칭구조로 돼 있다. 매칭비율도 재정자립도나 노인인구, 복지비 지수 등에 따라 모두 다르며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넘어 비용을 맞추는데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부터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을 들어보면 정부는 서울시에 500개의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을 목표로 설정하고 예산도 배정했다. 이에 따르면 각 자치구마다 4년 간 최소 10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의 국공립어린이집을 건립해야 되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돈이다. 어린이집 건립비용 또한 모두 국비와 시비, 구비 등의 매칭구조로 돼 있다. 운영비용은 둘째 치고라도 최소 평당 900만원 꼴의 어린이집 개원 비용 충당은 자치구로서는 당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나마 예산 사정이 좋은 수도권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집중돼 있는 이유다.

실제로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각 자치구의 복지비용은 매년 3~4%씩 증가하고 있다. 강서구의 경우 지난 2013년 54%였던 복지비용이 지난해에는 58.6%로 증가했고 급기야 올해는 60%를 넘어 62.9%로 늘어났다.
강서구 예산 팀장은 “현재 우리 구 전체 사회복지 비중이 매년 3%~4%씩 증액되고 있다”며 “이는 국비와 지방비(시비와 구비) 등의 복지 매칭 비율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비 분담금 5% 인상 ‘문전박대’


정부가 지자체에서 요구한 국비 분담금 40%를 수용하지 않고 35%만을 반영하면서 일선 자치구의 재정난이 커지고 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일선 자치구의 재정적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어떻게든 모자라는 비용(국비 분담률 5% 부족분)에 대한 추가 확충이 필요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문전박대’였다. 각 자치구 예산 담당자들이 찾은 중앙정부의 반응은 싸늘했다는 것이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현재 각 자치구 예산 담당자들은 ‘재정 실무 T/F’를 구성해 정부가 약속한 국비 분담율 40% 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재정 실무 T/F’에는 서울시 예산담당관과 행정과 등 2개 부서와 서울시 12개 자치구가 힘을 합쳤다. 결국 광역시와 자치구가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 등을 2~3 차례 찾아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상옥 종로구 예산 팀장은 “일단 예산은 짜 놓긴 했지만 돈 나올 구석이 없다.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행정차지부와 세종시 보건복지부에도 찾아가 봤지만 대책이 없다”며 “지난해 시에 요청해 얼마의 예산을 받기는 했지만 이제는 시에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약속대로 부담비율을 5% 인상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자치재정

각 자치구들은 예산 부족으로 기초연금과 영유아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 구비 분담분 중 5%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영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4분기에는 복지디폴트도 예상되고 있다.

현재 예산 담당자들은 “지난 2012년 국회 지방재정 특위 보건복지 위원회에서 서울시 무상보육 국고 보조금 40%를 의결한 바 있다”며 약속을 지켜 국비 부담률을 5% 인상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올 7월 추경을 통해 올해 미반영 된 복지비용은 충당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상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라는 것이 예산 담당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자치구 세입은 한정돼 있는 반면 폭발적인 복지비용의 증가는 인건비 마련도 어렵게 될 것이라는 평가다.

현재 자치구 자체 세입은 재산세와 등록면허세 등 2개가 전부다. 매년 세수가 증가하는 항목도 아니다. 나머지 7개의 보통세는 모두 시에 교부금을 받는 형태로 배분되고 있는데 2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2년 전에 세수 비율을 높인 바 있어 이를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올해는 어떻게 넘긴다 쳐도 이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내년 말 쯤에는 복지비용이 70%대를 넘기는 서울시 자치구들도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인건비(자치구별 평균 30% 차지) 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현재 60% 대의 복지비 부담에 짓눌리고 있는 자치구들을 보면 주민 방범용 CCTV부터 상하수 시설, 노후 배관 교체 등 꼭 해야만 하는 주민 생활밀접 사업들마저도 포기하고 있는 사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예산 담당자들은 결국 해결책은 정부의 매칭 비율 조정 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자치구 예산 팀장은 “법정비율을 우선 챙기고 가용재원으로 구정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법정비율을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 하게 되면 인건비 편성도 힘들 것”이라며 “지난해 전국 구청장 협의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된 바 있으며 이 같은 이유로 정부에 현실에 맞는 법정비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尹鍾哲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