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더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시정칼럼>더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 시정일보
  • 승인 2015.02.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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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희 <기획취재국장>

[시정일보]‘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릴 적 설날이 오면 부르던 노래다. 우리 마음에 찾는 설날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던 옛 고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설 명절이나 추석명절이 되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부모나 가족을 찾아 고향 길에 오르게 된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명절은 막연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자라고 살았던 시간적 고향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곳을 향한 고향길이든, 마음의 고향으로 향한 회상이든 새로운 시작인 설은 우리의 삶에서 정말 소중하게 아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짚어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분노사회’였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분노는 고위공직자들의 성추문, 대학교수들의 성추행, 재벌3세 땅콩회항으로 이어지면서 증폭됐다. 세월호의 진도군 마지막 교신이 공개돼 그 설움을 더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는 다소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던 경기와 내수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온 국민이 이런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여행과 공연예약취소가 잇따랐고 음식점과 백화점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세월호 사고로 비탄에 잠긴 국민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다소나마 위안을 얻기도 했다. “사제들이 하느님과 만난다는 것을 잊은 채, 욕망에 사로잡혀 주변에 담을 쌓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영적치매를 보게 된다”는 쓴 소리도 거침없는 교황은 4박5일 방한일정 내내 겸손하고 소탈한 행보를 보였다. 경차나 오픈카에 올라 시민과 눈을 맞추며 갈등 당사자의 한쪽 편을 들지 않았다. 대신 성심을 다해 경청하고 함께 아파했다.

채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일년 내내 민초들 인내심을 시험케 하는 고위충의 ‘갑질’은 분노와 짜증을 더했다. ‘미친 회항’은 거짓해명, 사건은폐의혹, 외국언론의 비아냥까지 겹쳐 비난여론을 들쑤셨다. 보통사람을 억장 무너지게 하고 속 터지게 한 사건의 주인공은 대부분 ‘높은 사람’, ‘배운 사람’이었다. 좋다는 대학 나오고 어려운 시험에 통과했거나, 박사학위 받고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명문가나 재벌가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중 한가지라도 가졌으면 하는 조건들을 몇 개씩 가진 자들이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윗물’이고 ‘먹물’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나마 세월호 속에서 의인들을 보며 작으나마 희망을 얻기도 했다. 어쩌면 연말에 천만관객을 넘는 영화 ‘국제시장’ 등장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위로 받지 않았나 싶다.

영화 ‘국제시장’은 소위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연기도 어색하고 대사는 낮 간지러운 대목들도 많다. 그러나 그 연기나 대사에 진심이 담겨져 있다고 할까. 그 시절엔 그렇게 살았으니까. 필자도 그 시절에 태어나 새마을 노래도 부르고, 파월장병으로 복무했으니까 이해하고 그 삶을 느낀다. 영화는 흥남부두에서 국제시장으로, 서독탄광막장에서 베트남 정글로, 혹독한 현대사를 몸뚱이 하나로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들 앞에 올리는 헌시다 싶다. 세상이 어지럽고 사는 게 팍팍할수록 사람들은 잊고 있던 깊은 부성을 그리워한다. 그들은 권위의 상징 가장도 엄부도 아니다. 다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다. 강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여린 아버지다. 자식은 부모가 돼서야 비로소 아버지 삶을 들여다 볼 눈을 뜬다.

다행히 오늘의 우리 형편이 과거 어느 때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에 설날 고향 길에 오른다. 또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에 잠긴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 밝은 내일이 올 것을 기다리며 민족적 명절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양띠 해는 더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에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하며, 정말 따뜻해지는 고향 길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