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 출범 100일 잔치의 무리수
인사혁신처 출범 100일 잔치의 무리수
  • 윤종철
  • 승인 2015.03.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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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회 행정부공무원노조 사무총장

 

▲ 구문회 사무총장
[시정일보] 인사혁신처가 출범 100일 기념으로 「범정부 인사혁신 실천계획」을 내놓았다. 인사혁신처 계획을 들여다보면서 우려라는 말 그대로 근심과 걱정이 앞선다. 혁신내용이 없었다. 이로 인해 인사혁신처가 중심을 잡지 못하게 되고 악순환이 되풀이되면, 급한 마음에 앞으로 박근혜 정부 내내 하게 될 무리수와 실수가 걱정스럽다. 결국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이하 행정부노조)이 혁신내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문가를 양성하겠다고 하면서 대개 2~3년 이상 근무원칙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현재도 2~3년 이상씩 기본적으로 근무하고 있고 심지어 변호사 등 이견이 없는 전문분야에서는 5년을 넘는 중장기 근무형태가 다반사다. 심지어 이런 분야는 승진을 위해 정책분야로 보직변경을 원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현장이나 인사현황 전반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왜 이런 것으로 짜깁기식 정책을 내놓는 것인지 모르겠다.

둘째,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 일한 만큼 평가보상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5급 속진임용제, 1~2계급 발탁승진을 한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은 한순간에 사장도 시킬 수 있고 인재라고 생각되면 부사장이나 이사도 얼마든지 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건희 삼성회장의 말대로 1%의 천재가 회사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직은 그 막중함으로 인해 한 사람에게 함부로 많은 권한을 줄 수도 없고 그 권한을 행사하기까지 현장에서 철저히 검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나라의 정책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실화될 경우를 생각해보라. 사무관이 능력이 있다고 국장이나 과장 업무를 맡긴다면 과연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공직에서의 업무능력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관록과 함께 조직구성원들이 모두 인정하는 정당성이 없을 경우에는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여 이전에 내놓은 유학생 특별채용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추진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중복해서 내놓은 것이 아니길 바란다.

셋째, 개방성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말은 좋다. 개방성 교류는 김대중 정부 때도 공식적으로 대기업과 중앙부처간 인사교류가 실시된 적이 있다. 이후 관피아에 못지않게 그 폐해가 숱하게 언론에 언급되었다. 이러한 외부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기관에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인 비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다. 바로 기간제와 무기계약직이다. 이들 중에는 사실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위들도 많다. 이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채용해야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정부기관 내 비정규직문제를 미해결한 채로 경력개방형 직위가 도입되면, 공직사회 내 인사처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며, 이미 민간인 신분으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비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개방성 확대 추진에 앞서 정부는 사용자로서의 성실한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넷째, 공직자 가치상 확립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율배반적이지 않는가? 공직의 가치가 직업공무원제의 실현이고, 직업공무원제는 사회적 가치가 있을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고 또 효과도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직업공무원제를 지탱하는 주요한 토대가 공무원연금이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정리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공직자들의 자존감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새로운 공직가치니 공직문화니 하는 말을 한다고 공직사회 내부에서 감동의 물결이 일고 애국심이 불쑥 솟구쳐 오르겠는가? 현재는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각 부처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인사정책들을 짜깁기하여 포장만 바꿔서 내놓은 인사혁신처 100일 기념 계획서는 내용물을 뜯어본 순간 모두가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해서 작은 조언이라도 하고 싶다. 혁신은 편안함에 있다. 인사혁신은 인사의 편안함에 있다. 현재의 인사혁신처 정책들은 공무원들이 안일하다는 전제 하에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방향이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국민들을 따스하게 배려하고 안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 따스함이나 배려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인사문제를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도록 하는 편안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물꼬를 자연스럽게 터주는 것이 혁신인 것이다. 세상 사람은 다 아는데, 인사혁신처는 아직도 깜깜한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