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 서비스시대 ‘무조건 친절’…공무원들은 지쳤다
행정도 서비스시대 ‘무조건 친절’…공무원들은 지쳤다
  • 윤종철
  • 승인 2015.03.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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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정신질환ㆍ자살충동 등 부작용
민원처리 스트레스, 일상생활에서도 지장
복지민원 폭행ㆍ상해 빈번 ‘상담실 폐쇄’
악성민원 적극 대처 법적 장치 마련 필요


[시정일보 윤종철 기자]말투나 표정, 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수반하는 노동을 ‘감정노동’이라고 말한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등장한 노동형태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감정노동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공공기관의 행정부분에 ‘서비스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를 역이용한 떼쓰기, 협박하기, 허위신고 등 악성민원이 대폭 증가하면서 이를 상대하는 공무원들의 감정노동 피로도는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 공무원이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유산 등의 사례는 이미 적잖이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작금의 공공기관 감정노동 현장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현재 우리나라 감정노동 공무원들은 인격적 모욕까지 참으면서 웃음을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예컨대 막무가내식 폭언이나 인격적인 굴욕과 수모를 당해도 속수무책이다. 복지관련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빈번한 폭행과 상해로 민원인(클라이언트)과의 면담을 위한 상담실이 사라진지 오래다.

심지어는 민원인과 큰소리가 날 경우 징계나 상사로부터의 질책 등으로 이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기고 있으며 급기야 화를 통해 자신의 가족들이나 다른 영역으로 전파되는 양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으로 생긴 감정적 부조화는 좌절이나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을 보이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정신질환’이나 ‘자살’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노동에 대한 실태와 문제 인식에 대한 현주소는 얼마전 성동구가 5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설문조사 참여 직원의 91.2%가 민원처리시 좌절과 분노, 적대감 등 스트레스를 느낀적이 있으며 민원처리시 받은 스트레스로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은 직원도 87%에 달했다. 특히 이들 중 절반이 넘는 63.5%는 우울증이나 불면증, 만성피로 등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이제 감정노동은 민원처리 부서나 복지관련 부서에만 국한된 고충이 아닌 구청 전 부서 모든 직원과 관계된 문제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2명중 1명은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없이 그냥 속으로 삭인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단 1%에 불과했다.

한편 구는 악성민원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직원들의 의견을 받았다.

의견 중에는 △무조건적인 친절보다는 법에 따른 민원처리가 가능하도록 직원을 보호 △법령 및 처벌 강화 △감사과의 민원발생에 대한 처리 방법 개선 △악성민원인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 △스트레스 해소 공간 마련 △무조건 사과 등의 지양 △악성 민원 다툼시 직원 불이익 금지 △악성 민원인 사전 차단 △악성 민원인 법적 처벌 △악성민원 담당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 △구청내 3자 대면 방식 처리 △팀장의 신속한 중재 △대응팀 구성 △장기휴가 필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尹鍾哲 기자 / sijung1988@naver.com

사례1>
“너 때문에 죽을 거다” 협박전화 시달려

저는 임산부이고, 주로 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수급자는 아니지만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의 경제적인 부분과 연관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선정 여부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되다 보니 저 역시도 도와드릴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울 때가 많지요. 그러다보니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이 전화를 하셔서 “나 곧 자살할 건데, 죽으면 너 때문이다” 라거나, “너 죽이러 갈 테니 기다려라”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무섭습니다. 이 업무를 맡은 뒤로는 정말 찾아올까봐 퇴근길도 무섭고,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또 무슨 말을 할까 심장부터 뜁니다. 워킹맘에게 태교는 가장 먼저 내려놔야 하는 것임을 알지만, 유독 그런 전화나 방문인들이 몰리는 날이면 분노가 그들이 아닌 스스로의 처지에 향하기도 합니다. 우울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요. 임신한 게 대수냐고 할까봐 업무를 바꿔달라고 하기도 죄송스러워 그냥 산달을 기다리며 참습니다. 차라리 전화기에라도 음성 녹취기능이 사용되면 전화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좀 더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네요.

사례2>
공무원 친절 역이용 ‘민원인 분풀이창구’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법적 구속력입니다. 법적 근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내가 구청장이랑 잘 아는 사이인데,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라는 말은 다반사입니다. 특히, 복지업무 같은 경우 공무원은 ‘도와주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악용해 매일 같이 떼쓰고 윽박지르고 욕하는 민원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임대아파트 신청과 같이 저희 소관이 아닌 업무를 두고서 신청 기간 다 끝난 후인데 다른 지역으로 바꾸겠다고 매일 같이 찾아와 화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신청 방법, 기간, 해당 연락처를 안내해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그 분의 분이 풀릴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30분에서 1시간씩 반복되는 일입니다. 복지담당 공무원을 괴롭히면 뭔가 되겠지라는 잘못된 인식에 더해 공무원의 친절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자발적으로 오시지 않는 것 외에 해결책은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해소할 방법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게 답답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