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부인들이 좋아하는 늙은 남편
<시정칼럼>부인들이 좋아하는 늙은 남편
  • 시정일보
  • 승인 2015.03.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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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동물사회에서 늙은 수컷은 참 비참하다. 평생 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던 숫사자는 사냥할 힘을 잃으면 젊은 수컷에게 자리를 내주고 쫓겨나 혼자 죽어 간다. 늙은 숫고양이도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침팬지도 먹이 주는 습관을 바꾸면 늙은 수컷은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젊은 것들과 암컷에게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어느 나라건 ‘늙은 남편'을 조롱하는 농담은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비에 젖은 낙엽’ 즉 비 오는 가을날 구두에 붙은 낙엽 신세로 비유된다. 아무리 떼어 내려 해도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사 갈 때는 장롱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둥, ‘아내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안고 있어야 데려 간다’는 둥 우스갯소리도 있다.

60 환갑까지만 살아도 좋아서 잔치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덧 ‘고래심줄’ 같이 질긴 목숨이 돼 버렸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여성의 71.8%가 ‘늙은 남편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연구 조사를 발표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여자가 남자를 돌봐야 하는 기간이 늘어 그만큼 여자의 부담이 많아진다. 늘 듣던 말대로 남자들에겐 섭섭하고 소외감이 들어 점점 더 내몰리는 느낌이다. 늙어가는 남편을 부담스러워 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뿐이다.

60대에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은 아직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고, 70대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은 아픈데 없이 몸이 건강한 사람이고, 80대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은 마누라한테 밥상 차려서 얻어먹는 것이고, 90대는 전화 주고받은 친구가 많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좋은 보약 있으면 마누라 먼저 먹게 하여 마누라가 건강한 것이 늘그막에 가장 좋은 복이 아닐까.
그런데 ‘3소 5쇠’라는 말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3소는 마누라 말에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옳소’, 마누라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잘 했소’. 마누라가 시키는 일에 무조건 ‘알았소’. 5쇠는 집안 일 전부 맡아서 하는 ‘마당쇠’, 마누라 일에 나서지 말고 입 다문 ‘모르쇠’, 자기의 비밀을 함부로 나불되지 않은 ‘자물쇠’, 돈을 절대 쓰지 않은 ‘구두쇠’, 밤 일을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는 ‘변강쇠’. 그래야 퇴직 후 마누라에게 구박을 당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이다.

요즘 황혼이혼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통계를 보면 단지 우스갯소리로 넘길 이야기는 아니다. 하여튼 마누라에게 잘해서 손해 볼 것 없다. 그래야 따뜻한 밥 얻어먹는다.

결국은 나이가 들수록 버림받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어떻게 처신하고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가급적 젊은 시절부터 스스럼없이 홀로서기 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자, 남자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거침없이 해나가는 생활습관을 갖다보면 부인이나 가족들에게도 환영을 받고 장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에헴’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의식을 버리는 일이 더욱 즐거운 일상을 지켜 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평균 수명과 노년의 결혼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주변 노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쉽게 듣는다. “한 평생 힘들게 일했고 별다른 취미 생활도 해보지 못했는데”, “퇴직했으니 내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했는데……”, “내 신세가 왜 이럴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앞으로 남성 노인들은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어머니 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부터 퇴직 전까지 식구들 먹이고,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하느라 한 평생을 뼈가 빠지도록 일 해오면서 취미생활은 커녕 돈 한 푼 아끼려 친구들 술 한 잔 사주는데도 인색해야 했던 일도 많았는데 늙어 이런 취급을 받는다 생각하니 분통만 터질 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 문화는 이제 여인들에 의해 사라졌다. 그 고분고분하고 순박하며 시어머니, 시누이들을 무서워하며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던 시절을 어디 가서 다시 찾아 올 수가 있을까?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가 없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 지금이라도 같이 있을 게 자연스럽고 더 좋도록 습관을 들이고 그런 문화를 생활 속에 정착시켜가야 할 터이다.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