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율곡 이이를 낳은 명성황후?
<기자수첩>율곡 이이를 낳은 명성황후?
  • 윤종철
  • 승인 2015.03.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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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나른한 휴일 오후, 포근해진 날씨 탓인지 유독 예민해진 아내를 달래기 위해 종로 나들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나들이는 심사숙고 끝에 경북궁과 인왕산 사이, 종로구가 먹거리와 함께 관광벨트로 엮으면서 최근 관광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을 선택했다.

이곳에는 겸재 정선의 화폭을 그대로 재현해 낸 ‘수성동 계곡’과 한국화 1세대로 불리며 파격적인 구도와 채색을 통해 격조 높은 회화 세계를 구축한 남정 ‘박노수 미술관’이 있으며 도시락 카페로 유명한 ‘통인시장’ 도 있어 한 나절 거닐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정감어린 골목들을 돌아 ‘서촌의 향기’ 라는 카페를 지나니 ‘세종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얇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아내가 이를 보곤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여기는 ‘서촌’이야, ‘세종마을’이야?”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비단 내 아내의 궁금증만으로 끝낼 일은 결코 아닌 듯 싶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공존하고 있는, 역사적 정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의 공식 명칭은 ‘세종마을’ 이다. 진짜 ‘서촌’은 서소문이나 정동 일대를 가리킨다.
지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 단지 경복궁 서쪽에 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보니 아무 역사적 근거 없이 ‘서촌’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져 버렸다.

특히 ‘북촌’과 대비되면서 지명에 인지도가 생기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를 관광객 유치 홍보에 이용하면서 더욱 굳어져 버린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조차도 ‘세종마을’이란 정식 명칭을 알고 있으면서 각종 관광 자료나 사업 명칭에 버젓이 ‘서촌’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나 지자체가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꼴이다.

언젠가 명성황후를 5만원 권에 있는 신사임당으로 설명하며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엉터리 중국인 가이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종로구가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이미 엉킬대로 엉켜버린 이해관계 매듭을 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종마을엔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올바른 지명으로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세종마을은 외국인들의 머릿속에 어쩌면 율곡 이이를 낳은 ‘명성황후’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