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4월은 잔인한 달인가
<특별기고> 4월은 잔인한 달인가
  • 시정일보
  • 승인 2015.04.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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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시인

[시정일보]4월의 역사적인 아픔은 1865년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이 종결된 직후인 링컨은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도중 그에게 반감을 가졌던 남부출신 괴한의 습격을 받아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튿날 4월15일 사망한다. 100여년이 지난 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멤피스의 모텔에서 과격한 백인단체 회원의 총탄에 저격당해 사망(1968년4월4일)한다.

1912년 4월12일에는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최초의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한다. 1517명이라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수원 제암리 주민학살(1919년 4월15일)이 있다. 제주 4.3사건(1948년 4월3일)이 있다. 작년에는 세월호(4월16일)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이 이프트 전투에서 처음으로 독가스를 사용했던 것도 4월(1915년 4월22일)이었다. 1919년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집회 중이던 인도인들을 영국군이 무차별 학살하여 400여명이 숨지고 1200여명이 다친 것도 4월(4월13일)이었다. 더 가까운 과거, 소련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사고(1986년 4월26일) 역시 4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쯤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4월엔 대학가의 시위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노사의 춘투도 4월이 절정을 이룬다. 4월의 편을 들자면 겨우내 움츠렸던 투쟁들이 계절의 온기와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도 본다. 한편으로는 4월에 일어난 사건 사고는 봄의 계절과는 무관하기도 하다.

T.S엘리엇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하략)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근거는 무엇일까. 문맥을 살펴보면 겨울철 눈으로 덮인 채 근근히 목숨을 이어갔던 추억과 욕정이 4월이 되어 봄비를 맞으며 뒤섞여 깨어나고 라일락을 피워 내기에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즉 4월을 맞아 깨어나는 추억과 욕정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옛날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가출한 일들도 4월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시기도 4월이 아닌가 싶다. 감수성이 풍부한 예술인들도 죽거나 자살한 경우도 있다. 시인 이상과 천상병 시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달도 4월이었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가스관 흡입으로 자살한 것도 <천년유혼>, <패왕별희> 등 숱한 영화로 사랑받았던 중국의 영화배우 장국영이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도 4월이었다. 그는 4월1일 만우절에 호텔에서 투신자살로 마감하여 세계의 팬들을 믿기 힘들게 하였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는 것은 4월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 웅크리고 있다가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4월에 집밖 나들이를 포함해 활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확률적으로 사건 사고가 많아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9.11도 대구지하철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사건도 4월에만 몰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춘투도, 학생시위도 계절이 주는 적절한 환경적 여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4월을 가장 두려워 한다. 역사적으로 아물지 않는 사건 사고 기억 때문이다. 찬바람에 수많은 꽃 같은 젊은이들을 바다에 보내고 온 국민들은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던 4월. 금년의 4월은 목련이 피고 라일락이 피는 나무그늘 아래서 김소월의 시집을 읽으며 다난한 4월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4월은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잔다르크가 백년전쟁에서 오를레앙을 되찾는 때도 4월(1429년 4월29일)이었다. 이승만 부정선거를 분노하여 분연하게 일어난 4.19혁명도 4월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것도 4월이었다.

역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섞이며 흘러가는 것이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