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칼럼>설렁탕의 유래와 선농대제
<단체장 칼럼>설렁탕의 유래와 선농대제
  • 시정일보
  • 승인 2015.04.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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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시정일보]각박한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회식이나 술자리를 하기 마련이고 다음날 아침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숙취 해소를 위해 해장국을 찾게 되는데 현대인들이 속풀이 수단으로 즐기는 대표적인 음식이 설렁탕이다.

사골과 잡뼈, 사태 등을 정성껏 끓여 잘 우러난 육수에 밥을 말아 송송 썬 대파와 소금, 후추를 넣고 잘 익은 깍두기와 갓 무친 겉절이를 곁들여 먹는 설렁탕은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우리민족이 즐겨먹던 가장 대중적 전통음식인 설렁탕이 동대문구 제기동 선농단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동대문구 무학로44길 38(제기동 274-1번지)에 있는 사적 제436호 선농단에서는 매년 곡우날(穀雨日, 4월 20일)을 전후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선농대제를 올린다.

선농(先農)의 기원을 알아보면 신라때 입춘 뒤 첫 해일(亥日)에 명활성의 남쪽 웅살곡에서 선농제를 지냈으며, 입하(立夏)뒤 해일에는 산원에서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성종 2년(983년) 정월에 왕이 원구단(園丘壇)에서 기곡제(祈穀祭)를 지내고 몸소 적전(籍田)을 갈며 신농(神農)에게 제사하고 후직(后稷)을 배향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농은 신라때부터 비롯되었으나 신농과 후직을 제향한 것은 고려 성종 때부터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선농단(先農壇) 친경은 조선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 융희 4년(1910년) 5월에도 행하였으나, 일제치하에 들어가면서 폐지되었다가 1979년부터 제기동의 뜻 있는 분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구성하여 선인들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이 단에서 치제를 올리다가 1992년부터 동대문구와 선농대제보존위원회가 함께 제를 올리고 있다.

선농대제(先農大祭)를 지낸 후 왕을 비롯한 조정중신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밭을 간 뒤,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끓인 국밥과 술을 하사했는데, 그 국밥을 선농단(先農壇)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단→선농탕→설롱(렁)탕으로 변한 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이다.

우리는 흔히 하루아침에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곧바로 사라지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보존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로 계승·발전시키는 일이야 말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뤄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대문구에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만한 전통 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우리는 선농단을 비롯한 서울약령시와 보제원, 영휘원, 홍릉, 고미술상가 등 전통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지역축제를 개최하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선농단에서 열리는 선농대제는 ‘대한민국 농사의 시작, 희망의 씨앗을 뿌려라!’라는 축제 구호처럼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행사다.

역사적 고증을 통해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선농대제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함은 물론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농수산물 수입개방으로 실의에 빠진 농업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선농대제를 통해 농업의 소중한 의미를 되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동대문구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선농단의 정비와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타당성 용역검토를 통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2012년 문화재위원회와 도시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본격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선농단은 고증을 받아 옛 모습으로 정비하였고 지하에 건립하는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현재 95%의 공정률을 보이며 올해 선농대제와 함께 개관할 예정이다.

이번 선농대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손에 전하고 위대한 전통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동대문구의 미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