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외로움(loneliness)이 글로벌 곳곳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 나아가 조기 사망 위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전 세계 60세 이상 고령층의 11.8%가 외로움을 경험하고, 그중 25%는 사회적으로 아예 고립돼 있다. 고로 중년층조차 외로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사회적 연대의 붕괴를 경고했다.

한국과 일본처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에서는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가족이 고령층을 돌보던 시대를 지나 산업화와 복지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의 돌봄 주최가 국가와 자치단체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각지대 탓에 고령층 인구의 외로움이 가중된 것이다. 특히 노인빈곤과 자살 비율이 높아진 것이 문제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외로움은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갤럽이 142개국을 대상으로 작년 10월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성인 4명 중 1명(10억 명 이상)이 ‘매우 외롭다.’, 연령별로 보면 19~29세 청년층이 가장 높은 수치(27%)를 보였다.

WHO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노년층의 3분의 1, 청소년의 4분의 1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이다. 그리고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뇌졸중, 심장병, 당뇨, 우울증, 불안,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등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시간당 약 100명, 연간 87만1천 명 이상이 이에 따라 사망한다고 추산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사회적 접촉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세계적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외로움을 긴급한(pressing)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발족했다. 사회적 고립의 고리를 끊어 외로움이 초래하는 육체적·정신적 위험을 막겠다는 취지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각국에서도 외로움 전담 장관과 대사를 임명하는 등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외로움을 글로벌 보건 과제 우선순위에 두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이미 여러 나라가 ‘외로움 병’ 치유 대책에 나섰다. 2018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해 화제가 됐다. 외로움부 장관은 인력이나 공간 등이 제공되는 별도 부처의 장이 아니고 스포츠 시민사회부 장관이 장관직을 겸직하는 형태였다. 겸직 장관에게 외로움에 대한 책임을 부여해 이를 세심히 살펴보도록 한 상징적 조치였지만 정부가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제도적 대응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은 2021년 고독 문제를 담당하는 각료직을 만들었다. 역시 다른 장관이 겸직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장관직 신설과 함께 여러 대책을 시행했다.

1990년대 거품 붕괴 후 많은 청년이 사회에서 좌절을 경험했고 상당수가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이들이 40∼60대가 되면서 중장년 히키코모리로 이어졌고 코로나를 계기로 그 문제가 더 두드러졌다. 외로움이 일부 사람이 간헐적으로 겪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회적인 의제라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스웨덴은 외로움을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인식하고 일상 공간에서의 사회적 연결 강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단체 여가 활동에만 사용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지급하고 공립학교에선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이는 휴대전화를 금지하면 대면 교류가 늘어나고 사이버 괴롭힘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외로움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영국을 비롯한 일본, 스웨덴, 미국 등은 외로움을 국가적 문제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여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외로움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여러 대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아직은 현실을 못 좇아가고 있다.

외로움은 누구 한 사람의 문제일 수 없다.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은 주위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을 말하기도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세상의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아이고, 외로워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외로움은 생애주기에 따라 발생원인 또한 상이하다. 아동의 외로움은 친구로부터의 따돌림이나 괴롭힘, 부모 이혼, 전학 등에 기인한다. 청년(20대)의 외로움은 부모로부터의 독립, 취업 준비, 사회진출에의 부담 및 좌절 경험 등에 기인하며, 청장년(30대)의 외로움은 가족의 도움이나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출산, 자녀 양육, 미혼 등에 기인한다. 중년(40~50대)의 외로움은 성공 후의 허무감, 퇴직, 가정 내의 불화 등에 기인하며, 노년의 외로움은 은퇴, 자녀 독립, 질병 발생 등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외로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의 주요 원인으로는 질병, 낮은 소득과 교육 수준, 사회적 교류 기회 부족, 1인 가구 증가, 공공정책 미비, 지역사회 인프라 부족, 디지털 기술의 남용 등이다. 외로움 문제를 현실에 부합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외로움을 정부 정책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

외로움이 사회문제가 되는 건 우리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내놓은 고독사 대책, 서울시가 지난해 신설한 ‘돌봄 고독 정책관’ 정도가 처방책이다.

그런데 지난 6·3 대선에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민주당의 ‘외로움’ 관련 정책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집에는 정부 내에 외로움 정책을 전담하는 차관을 지정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다행이다. 폐기하지 말고 챙겼으면 하는 공약이다. 복지부나 여성가족부에 담당 차관을 신설해 맞춤형 정책을 하나둘 마련했으면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도 이제 외로움을 담당할 장관이 필요하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외로움 관련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아이고, 외로워라, 이제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신속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한남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