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복 논설위원
최기복 논설위원

[시정일보] 무소불위의 특검 정국하에서 국민적 불안은 가중되고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은 살길이 막연하여 한숨만 쉬고 있는 차제에 이재명 대통령의 첫 일본, 미국의 순방이 국내외 정세 속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정당정치의 균형이 깨지면서 갈등은 고조되고 진영논리의 지배 속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닫은 많은 국민들의 상실감 속에서 실의에 처해 있던 작금에 미·일 방문은 탈출구 같은 것이기도 하다.

대외적으로는 끝나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아랍진영의 무차별 살상 등 영토분쟁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전략 경쟁, 기후 변화 대응, 디지털 전환 등 전 세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거대한 도전도 우리의 숙제다. 더구나 한국이 선진국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큰 부담이기도 하다. 독일,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로 한국이 랭크됐다.

이런 국내외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통령의 순방외교가 이제 첫 시험대를 거쳤다. 경제계 수장들을 포함 대규모 외교 방문단이 27일 귀국길에 오른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그 결과는 자못 기대해 볼 만하다. 여야의 엇갈린 반응과 논평은 으레 그러려니 해야 한다. 하나 되는 국민적 기대에 왜곡과 침소봉대로 일관하는 정치권의 행태에 쓴웃음을 짓게 한다. TV 화면에서 본 미·일 정상들의 표정은 시종 밝았고 준비된 워딩이거나 기지나 재치로 받아들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표정도 시종 밝았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평가를 탑재하고자 한다. 한일 간의 정상 회담은 예견된 수순으로 수탈의 역사를 인정하고 새 시대를 향하여 마당을 함께 쓰는 관계라는 인식의 공유라는 점에서 야당시절 정치의 쟁점화로 삼았던 과거에 대해 대통령은 여당 대통령으로서 좌표를 설정한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을 거둔 셈이고, 당연하기는 하지만 이북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를 향한 안보의식의 공유도 성과라고 봐야 하겠다.  

미국순방은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을 그리는 기회가 됐다. 군사·안보를 넘어 경제·기술·문화 등 다층적 협력 관계로 진화해 온 한미 관계는 이번 회담을 통해 실질적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와 함께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 구체적 결과물이 뒤따라야 한다. 재계의 천문학적 대미투자는 트럼프의 강요에 의한 것일지라도 손해 보는 장사가 돼서는 안 된다. 

또한 이번 순방은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 외교의 독립성과 균형 감각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하되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하는 외교적 묘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강조해 온 만큼 감정과 이념을 배제한 실리적 접근이 실제 외교 행보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주목된다. 그렇나 첫 단추는 일단 긍정적으로 끼워진 것 같다.

국내 정치적 관점에서도 이번 순방은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최근 정치적 불안과 정국 혼란 속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국제무대 활약은 국정 동력을 재정비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국익을 위한 실질적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준다면 외교는 내치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과 일관된 전략이 중요하다. 이번 순방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후 이어질 다양한 외교 현안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세계의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 바로 지금 시작되고 있다. 물론 장사꾼 기질의 트럼프의 쇼맨십과 가진 자의 횡포에 농락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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