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일보] 가을이다. 여행을 떠나자.
오곡백과가 탐스러운 결실로 들녘에 금파를 선사하고 있다. 논두렁 한 귀퉁이에서 귀뚜라미는 이슬을 머금고 목을 가다듬고 그 좁은 길을 걷노라면 발끝에 이름 모를 들꽃이 매달린다. 밭에는 콩이며 고구마가 알차게 들어앉아 익어가고 있는 계절이다. 산비탈 우르르 쏟아지듯 피어있는 구절초는 순백의 함초롬한 자태로 가을을 예찬하리라.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가을 속으로 깊이 떠나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하나 필자가 권하는 여행은 한 권의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가을날 한 권의 시집을 펼치면 순수한 시심이 가슴에 고여 옹달샘이 되고 맑은 시심이 솟아날 것이다. 누구든지 시를 읊조리다 보면 시를 쓰는 시인이 되는 황홀경을 느낄 수 있다. 에세이집을 품에 안고 문장에 도사리고 있는 감동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역사, 과학, 경제 등 어떤 장르의 책이라도 훌륭한 가을 여행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언론을 통해 문해력에 대한 심각성을 감지했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해로 불거진 일이 종종 있었다. ‘금주 행사 OOOO’이라는 내용을 “왜 학교에서 술 마시는 행사를 하나”, ‘소풍 중식 안내 OOO OO’을 읽고 “한창 성장하는 학생들이 밥을 먹어야지 중국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등 웃지 못할 항의가 있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혀를 찼다. 이뿐만이 아니라 지성의 전당 대학교에서도 문해력 오해에 대한 수위는 위험했다. 지도교수의 과제 제출 안내 공지 ‘금일 중으로 리포트 제출’에 대해서 “O요일에 제출하라고 하셨는데 금요일로 바뀌었나”라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심심치 않게 문해력에 대한 글이 매체의 지면에 올라올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런가 하면, 강남을 위시해 교육의 열풍이 거센 도시에서는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원하는 학원에 보내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고 학원 시험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 자녀를 위한 이동식 변기를 준비했다고 했다. 한국의 사교육 열풍이 기저귀를 찬 어린이를 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일부 영어학원은 7세 반에서 미국 초등학교 3~4학년 교재를 사용한다고 한다. 외국 매체는 ‘6세 절반이 입시 학원에 다니는 나라’라고 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을 ‘영유아 사교육 공화국’이라고 보도하고 대한민국의 조기 사교육에 대해 외국 학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오호통재라!
하여 필자는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재차 권유한다. 책은 훌륭한 스승이다. 책을 쓴 저자가 훌륭한 스승이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를 발판 삼아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체득할 수도 있다.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품에 안고 사랑을 가득 담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읽어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고귀한 재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열심히 일한 그대.
가을이 깊어 가는 시간의 골짜기로 그대를 초대한다. 한 권의 책을 안고 삼박자 왈츠를 우아하게 추어도 좋다. 한 편의 시귀(詩句)에 혼절해도 좋다. 가을,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