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명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신저(Messenger), 전화, 영상통화 등과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이토록 연결된 세상에서 왜 이렇게 외로운가? 그건 아마도 인간관계의 본질이 ‘연결’이 아니라 ‘머물러‘이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누르면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말은 오가지만, 마음은 닿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누군가의 곁에 오래 머물러 주는 일이다. 기쁠 때는 축하해주고, 슬플 때는 조용히 옆자리를 지켜주는 일. 말보다 침묵이 힘이 될 수 있는 순간,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진짜 관계다.
인간은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살아도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가 발현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부관계의 불화는 수심에 잠기게 만들고, 자녀와의 갈등은 애간장을 태운다. 친구 간의 관계가 틀어지면 유대감을 잃고 고립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인간관계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서 <무엇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가>를 알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청소년 700여 명을 뽑아 그들이 노인이 될 때까지 무려 75년 동안 추적 조사했다. 부모의 직업부터 건강, 결혼, 가정생활, 사회적 성취, 친구 관계 등 삶의 전반을 살폈으며 정기적으로 뇌 스캔 검사, 건강 검진 등 신체적인 변화까지 표시했다.
결과는 행복한 삶의 조건은 바로 ‘인간관계’였다.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가 긴밀할수록 행복도가 높았다. 관계가 단절되어 외롭게 사는 사람일수록 행복감이 떨어지고 정신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으며 수명도 짧았다. 또한, 인간관계는 양적 요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관계에는 친구, 가족, 연인, 동료 등 다양한 관계가 존재하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좋은 인간관계는 네트워킹 파워로서 사회적 성공의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말이 있다. “혼자 힘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마다 누군가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좋은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가? 행복의 원천이며 정서적 안정의 기반이 되는 인간관계는 소통과 공감과 이해와 신뢰와 배려를 먹고 성장한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돈이 아니라 ‘사람과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삶을 마감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삶의 본질을 본다. 성공, 돈, 명예보다도 결국 남는 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후회다. 수많은 연구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사실이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많은 사람이 후회한 건 돈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는, 아니 누구나 죽기 전 후회하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부족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에 기반한 머물러 이다. 머묾이란 호감, 신뢰, 서로의 욕구(Needs) 등이 있다. 이러한 요소가 강하게 적용할수록 서로에 대한 친밀도 또한 확고해진다. 요새 SNS 떠도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 죽음을 앞둔 이들이 가장 많이 한 고백은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었다. 감정 표현을 미루다 보면, 언젠가 그 말을 전할 사람이 사라진다. 자존심 때문에, 어색해서, 혹은 시간이 많을 거라 믿어서 사랑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침묵이 가장 큰 상처가 된다.
* 많은 이들이 “그때 시작했더라면~~”이라고 말한다. 두려움 때문에, 남의 시선 때문에 미뤘던 일들이 결국 인생의 공백으로 남는다. 인생은 언제나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의 연속이다. 미루는 습관은 결국 후회의 시간을 늘리는 일이다.
* “그땐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는 누구나 안고 간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가 관계를 살리고,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그러나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면, 평생의 짐이 된다.
* 많은 사람이 일과 돈에 묶여 가족을 소홀히 대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건 언제나 가족이다. 아이의 웃음, 배우자의 손, 부모의 눈빛. 결국 행복은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늦게 후회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보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문제 중 대부분은 스스로와의 관계에서 겪고 있는 문제를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다. 밖으로 나가서 남들을 바꿔 놓을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들의 생각을 조금씩 바꿔 나가다 보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동으로 개선된다.
어쨌든, 인간은 ‘거처’를 원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머물기를 원하는 존재다. 마음 둘 곳이 필요하고, 정서적 거처를 찾는다. 진짜 인간관계란,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그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한때 함께 머문 기억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 자리는 말이 아니라 온기로 남는다.
진짜 인간관계란, 떠나지 않고 있어 주는 마음이다. 기술은 우리를 연결해 줄 수 있지만, 머물게 할 수는 없다. 머문다는 것은 시간을 주는 일이고, 이해하려는 용기이며,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행위다. 좋은 관계는 이렇게 맺어진다. 오늘, 당신 곁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가 바로, 당신 인생의 가장 소중한 관계일지 모른다.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