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헌’없이 대한민국 미래없다
지방분권 ‘개헌’없이 대한민국 미래없다
  • 문명혜
  • 승인 2017.01.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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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시리즈/ 1.개헌과 지방자치
   
 

[시정일보 문명혜 기자] 촛불의 거대한 물결. 탄핵정국으로 온 나라가 요동치며 격동의 역사가 펼쳐지는 대한민국 하늘위에 정유년 새해 밝은 해가 떠올랐다.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22년. 올해는 대한민국의 지방자치가 도약과 정체의 갈림길에 서있는 해다.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던 1987년 체제가 정치권과 국민다수의 원망을 받으며 개헌의 목소리가 높아져 7공화국 시대 개막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싸늘한 대지위에 힘차게 솟아오른 정유년 아침해를 맞으며, 매년 새해 초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기획물을 연재해 온 본지는 올해도 어김없이 독자와의 무언의 약속을 수행하려 한다.

올해 선택한 주제는 최근 정치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개헌’과 궤를 함께하는 ‘개헌과 지방자치’, 또 하나는 ‘자치단체 청렴도 평가의 허와 실’을 소개한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개헌과 지방자치’의 함수관계를 풀어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1987년 6월10일 시민항쟁의 결과는 대한민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년 유신헌법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국민들에 의한 대통령 직접 선출의 길을 열었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등 아시아 톱클래스 민주주의 국가의 위상을 얻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지방분권시대 개막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헌법은 여전히 그대로다.

당시 국민들의 여망이 실렸던 9차 헌법개정은 한 세대가 바뀐 지금, 유행이 지난 ‘낡은 옷’이 돼 버렸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변했으니 ‘상전벽해’가 바로 이 경우다.

 

지방분권 개헌이 시대정신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등장한 6명의 최고 권력자가 예외없이 불행한 임기말을 맞이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가 살아있는 헌법 탓이며, 분권형 개헌없이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남북분단과 6.25 전쟁 참화를 겪고 해외원조를 경제발전 밑천으로 삼아야했던 어려웠던 시절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했다는 논리가 일정한 설득력을 얻었지만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바뀌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헌법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해온 결과 탄핵정국이라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과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

개헌안은 권력의 형태나 대통령 임기에 대해 따로 정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권의 시대정신을 담는 것이다.

분권의 정신은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했던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권한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구현돼야 하며 지방분권은 개헌의 핵심적 사안이다.

현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제117조와 제118조 2개 뿐이다.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자치단체의 종류를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이 부기돼 있다.

제118조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두고 조직과 권한, 의원선거와 지자체장 선임방법, 지자체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이 현행헌법에 명시돼 있는 지방자치 관련조항 전부다.

자치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지만 국가권력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자치권을 행사토록 하는 ‘법령의 범주안에서’라는 제한규정을 명시함으로써 우리의 지방자치가 소극적이고 위축된 ‘위임자치’가 되도록 족쇄를 채웠다.

 

‘위임자치’의 한계 극복해야

법령의 범위라는 제한을 두니 법률뿐 아니라 대통령령이나 부령으로도 지방자치를 제약할 수 있는 위임자치의 결과를 낳게 된다.

분권시대에 맞는 지방자치 확대를 위해서는 우선 문제의 ‘법령의 범위안에서’를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그래야 현재의 위임자치 꼬리표를 떼고 ‘적극자치’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이미 충분한 실험을 거쳐 자생력을 갖췄고 결실을 맺을때가 됐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본격적 지방자치 실시 이후 22년, 사람 나이로 성년이 된 셈이니 타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권한과 자원을 중앙정부가 독점하는 중앙집권적 내용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대한민국이 대외적으로 지방분권 국가로 인식될 정도의 선언적 내용이 헌법 앞 머리에 명시돼야 한다는 걸 많은 전문가들은 희망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자치재정권, 조직권, 입법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내용을 개헌안에서 빠뜨려서는 안되는 중요한 대목임을 지적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모든 재화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공화국’이 가속화 돼 국가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지방분권형 개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혹독한’ 개헌의 조건

지방분권 확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중차대한 일이지만 우리의 경험칙은 개헌이 지난한 과제라는 것이다.

차 개헌에 지방분권 확대가 필수적 요소이긴해도 권력의 형태나 대통령 임기를 다시 정하는 것이 우선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않은 게 87년 헌법체제가 30년 동안이나 유지된 배경이다.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세력이 5년간 향유할 권력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자기 희생을 하거나 개헌에 찬성하는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의견일치를 봐야 개헌의 닻을 올릴 수 있는데, 그동안 한번도 충족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조건이 만들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개헌의 마지막 관문인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사회분화가 가속화 돼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민 절대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개헌안을 만드는 일이 쉽지않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게 되면 결국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개헌 늦추면 국가발전 정체

 

개헌을 가로막는 여러 조건에도 불구하고 개헌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이 많은 국민과 정치권 일반의 인식이다.

절대다수의 선진국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은 지방자치를 펼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오래전에 모델로 삼았던 미국조차도 50개의 연방이 독립국가에 버금가는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지방분권은 국제사회에서 ‘클래스’를 가르는 기준이 된지 오래다.

인의 의사가 국정운영의 금과옥조였던 절대왕정 시대를 거쳐 국민의 의사가 국가경영의 기반이 되는 민주주의 시대로 변해온 게 역사의 커다란 줄기다.

중앙집권적 요소가 너무나 많이 남아 있어 절대군주의 잔영과도 같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게 하는 우리의 헌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하며 개헌은 지방분권형이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문명혜 기자 / myong5114@daum.net

 

기자가 풀어보는 개헌의 역사

권력집착의 어두운 여정

 

1948년 7월17일 최초로 반포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1987년 10월29일까지 39년동안 총 아홉차례나 변신을 거듭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연장을 위해 두 번의 개헌을 단행했는데, 6.25전쟁 와중에 재선이 불투명해지자 대통령 국회간선제를 국민직선제로 바꾸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는 ‘위헌적’ 수단으로 개헌을 관철시킨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한 술 더 떴다. 자신의 영구집권 길을 열기 위한 개헌안 찬성의원이 한 명 부족하자 이론의 여지없는 수학의 답을 바꾸는 ‘사사오입 개헌’으로 우리 헌정사에 영원히 기억될 오욕을 남겼다.혁명 이후 세상에 나온 3차 개헌은 우리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새로운 정치실험에 나섰으나 바로 다음해 5.16쿠데타가 발발하자 서둘러 실험을 마감해야했던 불운한 헌법이었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장기 집권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기간 18년동안 4차, 5차, 6차, 7차 등 총 4번의 개헌을 관철시켰다.

차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3기 연임을 가능토록 하는 게 주요골자로, 1969년 10월21일 새벽 두시 국회별관에서 야당의원 없이 집권당 의원들이 2분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년 12월27일엔 ‘한국적 민주주의 실현’이란 이름으로 우리 헌정사에 가장 강력한 권력자를 만드는 7차 개헌, ‘유신헌법’이 등장한다.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과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킬수 있는 비상대권을 부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임기 6년, 횟수 무제한의 대통령을 선출토록 했으니 가히 절대군주급 통치자를 위한 헌법개정이 아닐 수 없다.

차 개헌은 전두환 등 12.12 주역들이 주도해 유신헌법을 대통령 7년 단임제로 바꾼 것이 큰 줄기다.

차 개헌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같은해 10월29일 군부독재의 상징과도 같았던 체육관선거 시대를 마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켜 현재까지 최장수 헌법으로 수명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경험칙은 개헌이 주로 통치자의 권력집착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과 최고 통치자가 3선 이상을 욕심내면 결국 파국을 맞았다는 것이다.로 정권을 탈취한 세력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음에도 ‘3선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7년 단임으로 몸을 사렸고, 마지막엔 직선제 5년 단임제를 받아들여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었다.

년 개헌으로 6공화국이 출범하고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정치권과 국민 일반에 87년체제 극복을 위한 개헌의 총의가 모아지고 있다. 개헌의 가장 중요한 관문인 입법부 구성원들이 현체제에 대해 충분히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의 가장 굳건한 빗장은 집권세력의 자기 희생인데 권력은 형제간은 물론이고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전래의 원칙을 비춰보면 개헌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문명혜 기자